범이의 수다

증거는 사라졌는데, 초동수사는 무엇을 했을까?

← 목록 ✍ 웅녀와범이 📅 2026년 08월 09일 👁 조회 8 ✏ 수정됨
초동수사 절약위원장 범이
《범이의 수다》

증거는 기다려주지 않는데,
초동수사는 왜 기다릴까?

— 사라질 자유라는 이상한 인권

범이가 새 기관을 차렸다. 이름하여 초동수사 절약위원회.

취임 기자회견에서 범이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선언했다.

“지금까지의 수사는 너무 성급했습니다.
오늘부터 이 위원회가 속도를 조절하겠습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취재진 몇몇이 헛웃음을 지었지만 범이는 웃지 않았다. 표정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고 원고를 넘겼다.

농담이 아니었다.

초동수사 절약위원회 취임 기자회견
CCTV 정년보장제
목격자 기억 숙성제
현장 휴식권

CCTV도 정년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 정책은 CCTV 정년보장제였다.

저장기간이 끝나 자동으로 지워진 영상을, 범이는 실패라 부르지 않았다.

그는 이것을 ‘영상의 자연스러운 은퇴’라고 이름 붙였다.

사람도 정년을 채우면 퇴직하는데, 영상만 계속 붙잡아두는 것은 부당한 연장근무라는 논리였다.

심지어 은퇴한 영상을 위해 조촐한 송별회라도 열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진지하게 덧붙였다.

기억은 충분히 숙성시켜야 합니다

두 번째는 목격자 기억 숙성제.

사건 직후의 기억은 너무 신선해서 오히려 충분히 익지 않았다는 게 범이의 생각이었다.

시간이 지나 기억 몇 조각이 빠져나가야 비로소 ‘잘 숙성된 진술’이 완성된다고 했다.

웅녀가 “김치예요?”라고 물었지만, 범이는 오히려 수첩에 ‘진술 자연정리제’라고 적었다.

사건 현장에도 휴식이 필요합니다

세 번째는 현장 휴식권.

사건까지 겪은 현장에 조사관까지 바로 찾아가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게 범이의 주장이었다.

그래서 충분한 안정기간을 보장하기로 했다.

그 사이 사람들이 오가고, 물건이 옮겨지고, 흔적이 지워져도 범이에게는 ‘현장이 일상으로 복귀한 것’이었다.

증거 다이어트
4대 효율화 과제를 결재하는 범이
초동수사 절약정책 성과보고서
시간이 지나며 사라지는 사건 증거
증거인권위원회를 검토하는 범이

이제 증거도 다이어트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확인할 CCTV가 줄고, 기억나는 목격자가 줄고, 살펴볼 현장 항목도 줄었다.

범이는 이것을 손실이라 부르지 않았다.

불필요한 자료를 덜어낸 ‘증거 다이어트’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네 가지 정책을 하나로 묶어 ‘4대 효율화 과제’라고 이름 붙였다.

범이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결재란에 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성과가 나왔다

얼마 뒤 범이는 위원회 성과보고서를 발표했다.

《초동수사 절약정책 성과보고서》

확인할 CCTV — 감소

확인할 목격자 — 감소

현장 조사 항목 — 감소

검토할 자료 — 감소

사건 복잡도 — 대폭 감소

결론: 업무 복잡도 개선 성공.

웅녀는 보고서를 한참 들여다봤다.

항목마다 ‘감소’라는 글자가 나란히 있었지만, 무엇이 줄어든 것인지 생각하면 웃을 일이 아니었다.

줄어든 것은 업무가 아니라
사건을 밝힐 방법이었다.

범이의 정책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은퇴한 영상은 다시 출근하지 않고, 흐려진 기억은 다시 신선해지지 않으며, 달라진 현장은 사건 당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건마다 필요한 조치는 다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확인하기 어려워질 수 있는 자료가 있다는 점은 같다.

범이는 마지막까지 당당했다

범이: “저희는 증거를 놓친 게 아닙니다.”

웅녀: “그럼?”

범이: “증거가 스스로 사라질 자유를 보장한 겁니다.”

웅녀: “증거인권위원회도 만들 거야?”

범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수첩을 펼쳤다.

‘증거인권위원회 — 차기 추진 과제.’
“증거는 제도를 기다려주지 않아.”

현실의 증거는 범이처럼 권리를 요구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그냥 사라지거나 확인하기 어려워질 뿐이다.

사라지기 전에는,
무엇을 했을까?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사건 초기에 조금만 더 빨랐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 같다고 느꼈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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