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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희망호와 연화마을

길 위의 만물상 1회 – 새벽 항구 시장에서 시작된 시골 만물상 이야기

← 목록 연재 ✍ 웅녀와범이 📅 2026년 07월 02일 👁 조회 8 ✏ 수정됨

 

 

1  희망호와 연화마을

 

 

새벽 네 시가 조금 넘으면 항구 뒤 시장 골목부터 먼저 깨어났다.

 

아직 밤기운이 다 걷히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시장 바닥은 이미 축축했다. 얼음 녹은 물과 생선 비늘이 섞인 물이 골목 아래쪽으로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었고, 누군가는 긴 빗자루로 그 물을 한쪽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스티로폼 상자를 끄는 소리가 새벽 공기 안에서 길게 긁혔다. 생선을 담은 파란 바구니가 바닥에 내려앉을 때마다 둔탁한 소리가 골목 안쪽으로 퍼졌다.

 

찬 공기 속에는 여러 냄새가 섞여 있었다. 멸치 비린내. 젖은 밧줄 냄새. 막 삶아낸 두부 냄새. 멀리 국밥집에서 끓고 있는 뼈국물 냄새. 이 냄새들은 따로따로 있는 것 같으면서도 새벽 공기 안에서 하나로 섞여 있었다. 오래된 항구 시장 특유의 냄새였다.

 

시장 사람들은 이미 하루 절반쯤을 살아낸 얼굴들이었다. 누군가는 허리에 손을 얹은 채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누군가는 생선 상자 위에 쪼그려 앉아 졸린 눈으로 종이컵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목장갑 낀 손이 연신 코를 훔쳤다. 시장 천막 위에는 밤새 맺힌 물방울들이 아직 떨어지지 못한 채 흔들리고 있었다.

 

국밥집 문이 활짝 열리면서 뜨거운 김이 골목으로 퍼졌다. 상인 두어 명이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발소리가 젖은 바닥을 튀기며 지나갔다.

 

 

희망호는 시장 골목 끝 전봇대 옆에 세워져 있었다.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진 오래된 1톤 트럭이었다. 조수석 문 아래쪽은 녹이 조금 올라와 있었고, 짐칸 천막은 몇 번이나 덧댄 자국이 남아 있었다. 앞유리 한쪽에는 오래된 스티커 자국도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옆구리에 긁힌 자국도 있었다. 언제 생겼는지는 기억도 안 났다. 누가 보면 이제 그만 쉬어야 할 것 같은 차였다.

 

하지만 희망호는 거의 매일 새벽 산을 올랐다.

 

진우는 늘 그렇듯 트럭 앞으로 가서 앞유리를 손바닥으로 한번 문질렀다. 밤새 내려앉은 습기가 손바닥 아래에서 흐릿하게 번졌다. 그는 장갑을 끼고 짐칸 문을 열었다.

 

철컥.

 

안쪽에는 멸치 상자와 두부 통, 계란 판, 고등어 박스가 순서대로 정리돼 있었다. 아직 김이 남은 두부 통에서는 따뜻한 냄새가 희미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멸치 봉지 위에는 하얀 소금 가루가 조금 내려앉아 있었다. 진우는 멸치 상자를 들어 위치를 다시 맞췄다. 비닐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새벽 공기 안에서 유난히 크게 들렸다. 멸치 비늘 몇 개가 장갑 끝에 붙었다.

 

고등어 박스를 안쪽으로 밀어 넣고, 계란 판 위쪽을 손으로 한번 눌러봤다. 금 간 건 없었다. 두부 통 뚜껑을 조금 열어서 안을 확인했다. 아직 따뜻했다. 멀리서 누가 소리쳤다. 고등어 좀 더 싣고 가. 진우는 웃으며 손만 한번 들어 보였다.

 

 

운전석에 올라타면서 선바이저를 열었다.

 

어제 주유소에서 받은 영수증이 접힌 채 끼워져 있었다. 진우는 그걸 꺼내 폈다. 기름값이 또 올랐다. 저번 달보다 리터당 몇 십 원이 더 붙어 있었다. 한 번 가득 넣을 때마다 차이가 쌓였다. 산길을 매일 오르는 차라 기름이 빨리 닳았다. 한 달에 주유를 몇 번씩 해야 하는지 머릿속으로 계산해봤다. 어렵지 않은 계산이었지만 계산할 때마다 기분이 달랐다.

 

진우는 영수증을 다시 접어 선바이저 안에 끼워 넣었다. 라디오에서는 아직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새벽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기름값 상승세가 계속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소리를 조금 줄였다. 라디오 소리보다 엔진 소리가 더 신경 쓰이는 새벽이었다.

 

"산 위는 더 춥겠죠."

 

"연화마을은 멸치 떨어지면 바로 티 나잖아요."

 

"거긴 이제 니 차 소리 들려야 하루 시작이지."

 

진우는 대답 대신 멸치 봉지를 다시 정리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고, 그러기엔 아직 자신이 없기도 했다. 희망호가 연화마을 하루의 시작이 된다는 건 그만큼 책임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시장 위쪽 하늘은 아직 검푸른 색이었다. 하지만 동쪽 끝은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진우는 짐칸 문을 한번 더 확인하고 시동을 걸었다. 오래된 디젤 특유의 떨림이 핸들 아래쪽으로 천천히 올라왔다. 요즘 들어 그 떨림이 조금 더 길게 이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아닐 수도 있었다. 그냥 날이 춥기 때문일 것이었다. 진우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누군가 희망호 본네트를 툭 두드리며 지나갔다. 이 차도 오래 버틴다. 진우는 웃었다. 오래된 건 원래 쉽게 안 멈춰요. 그 말 뒤에 잠깐 바람 소리만 지나갔다. 진우는 천천히 시장 골목을 빠져나갔다.

 

 

 

항구를 벗어나자 길은 점점 조용해졌다.

 

산으로 올라가는 도로 옆 논바닥에는 새벽 물안개가 낮게 깔려 있었다. 희망호 헤드라이트가 지나갈 때마다 안개가 천천히 갈라졌다가 다시 붙었다. 멀리 전봇대 불빛 몇 개만 희미하게 살아 있었다. 커브를 돌 때마다 짐칸 안에서 멸치 상자 부딪히는 소리가 작게 났다. 진우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속도를 조금씩 줄였다.

 

산 중간쯤 올라왔을 때 늘 같은 자리에서 속도를 줄였다. 길 한쪽이 오래전에 조금 내려앉은 곳이었다. 처음에는 몰랐다가 어느 날 바퀴가 깊게 빠지면서 알게 됐다. 그 뒤로는 그 자리만 되면 자연스럽게 브레이크를 밟게 됐다.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었다.

 

창문 틈으로 찬 공기가 들어왔다. 멀리 어디선가 까치 우는 소리가 들렸다가 사라졌다. 희망호 헤드라이트가 산길 옆 나무들을 스치며 지나갔다. 나뭇가지 끝에는 밤새 맺힌 물방울들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길 옆 감나무에는 끝내 떨어지지 않은 감이 두어 개 달려 있었다.

 

진우는 운전할 때 라디오를 오래 틀어두지 않았다. 대신 엔진 소리와 길 소리를 들었다. 어느 날은 브레이크 소리가 평소보다 길게 들렸고, 어느 날은 짐칸 흔들림이 유난히 컸다. 오래된 차는 그런 식으로 조금씩 상태를 말하곤 했다. 진우는 그걸 무시하지 않으려고 했다. 아직 고장 나면 안 됐다.

 

 

연화마을 입구 표지판은 여전히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다.

 

희망호는 평소처럼 마을 어귀 공터에 천천히 멈춰 섰다. 엔진 소리가 조금 길게 남았다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차에서 내리자 산 공기가 바로 얼굴 쪽으로 왔다. 시장보다 확실히 더 차가웠다. 입에서 하얀 입김이 나왔다.

 

마이크를 집어 들기 전에 마을 쪽을 잠깐 봤다. 굴뚝 두 군데에서 연기가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창문 하나가 이미 열려 있었다.

 

"바람 차네요~

천천히 나오세요~

두부 아직 따뜻합니다~

멸치 좋은 거 들어왔어요~

보고 싶어서 오늘도 또 왔어요~"

 

방송 소리는 아직 잠이 덜 깬 마을 골목 안쪽으로 천천히 퍼져나갔다. 소리가 담벼락을 타고 돌아가다가 골목 끝에서 희미하게 되돌아오는 것 같았다.

 

잠시 뒤. 철문 끄는 소리 하나가 들렸다. 그리고 또 하나. 창문 여는 소리. 장화 바닥 끄는 소리. 기침 소리. 연화마을의 하루는 늘 그런 소리들로 시작됐다.

 

 

진우는 방송 마이크를 내려놓다가 평상 아래쪽을 한번 바라봤다.

 

거기에는 이미 줄무늬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갈범이였다.

 

갈범이는 방송 소리가 들리면 거의 늘 제일 먼저 나타났다. 누가 키우는 고양이인지는 아무도 정확히 몰랐다. 어느 날부터인가 평상 아래를 자기 자리처럼 쓰기 시작했고, 사람들도 그냥 그러려니 두는 분위기였다.

 

진우는 짐칸 아래에서 작은 멸치 하나를 꺼내 바닥에 내려놨다.

 

"오늘도 빨랐네."

 

갈범이는 멸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코를 한번 갖다 댔다. 냄새를 맡은 건 분명했다. 그런데 먹지 않았다. 몸을 그대로 두고 꼬리 끝만 천천히 흔들었다. 그러다 평상 위를 올려다봤다. 평상 한쪽에 놓인 방석을 봤다. 조금 해진 꽃무늬 방석이었다.

 

갈범이는 한동안 그 방석 쪽을 보고 있었다. 고개를 조금 기울인 채로. 꼬리가 바닥에 천천히 내려앉았다가 다시 한번 흔들렸다.

 

그러다 바닥에 놓인 멸치를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서두르지 않았다. 작은 입으로 조금씩 씹었다. 멸치를 다 먹고 나서도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멀리서 박 할머니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두 손으로 장바구니를 꼭 잡은 채였다. 장화 바닥이 흙길을 천천히 눌렀다. 희망호 쪽으로 오다가 평상 앞에서 잠깐 멈췄다.

 

방석이었다.

 

조금 해진 꽃무늬 방석. 아무도 치우지 않은 채 몇 달째 그대로 놓여 있었다. 박 할머니는 그 방석을 한동안 봤다. 장바구니를 든 손이 그 자리에서 멈춰 있었다. 바람이 한번 지나갔다. 방석 끝이 조금 들렸다가 내려앉았다.

 

박 할머니는 손을 뻗어 방석 끝을 한번 눌렀다. 손바닥으로 위를 살짝 쓸었다. 먼지가 조금 날렸다. 그러고는 그냥 손을 거뒀다. 장바구니를 다시 잡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람이 좀 차네요."

 

짧은 말이 오갔다. 박 할머니는 고등어 앞에 한참 섰다. 손으로 봉지 바깥을 만져봤다. 그러다 계란 판 쪽으로 갔다. 눈길이 자꾸 짐칸 쪽을 향했다. 멸치 봉지 앞에서 잠깐 멈췄다.

 

"큰 거 말고 작은 걸로 줘."

 

진우는 잠깐 그 말을 들었다. 예전에 자주 듣던 말이었다. 진우는 말없이 작은 멸치 봉지를 꺼내 박 할머니에게 건넸다. 박 할머니는 봉지를 받아 들고 장바구니 안에 넣었다.

 

돌아서다가 한번 더 평상 쪽을 봤다. 방석이 그 자리에 있었다. 박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걸어갔다.

 

 

이 할머니가 나왔다.

 

손에 작은 스테인리스 반찬그릇을 들고 있었다. 가장자리가 조금 찌그러진 오래된 그릇이었다. 뚜껑도 없었다.

 

"멸치 이 그릇에 담아줘."

 

진우는 멸치를 그릇에 담았다. 큰 것과 작은 것을 적당히 섞었다. 이 할머니는 그릇을 받아 들고 한번 흔들어봤다. 멸치가 그릇 안에서 찰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국물이 잘 나오는 거냐고 물었다. 진우는 오늘 거 좋다고 했다. 이 할머니는 그릇을 두 손으로 잡고 돌아섰다. 뒷모습이 조금 굽어 있었다.

 

 

최병수가 장갑 낀 손으로 계란 판을 한번 들어보며 말했다.

 

"희망호 소리 안 들리면 꼭 뭐 빠진 거 같어."

 

진우는 웃었지만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 말이 반가우면서도 괜히 무거웠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할수록 빠질 수 없다는 느낌이 더 강해졌다.

 

"일곱 살."

 

그게 다였다. 최병수는 두부 봉지를 들고 돌아섰다. 산길 위쪽으로 장화 소리가 천천히 멀어졌다.

 

 

진우는 외상 장부를 꺼냈다.

 

장부 가장자리 종이는 오래 넘겨져 모서리가 조금 닳아 있었다. 누구 이름 옆에는 줄 하나가 더 그어져 있었고, 누구 이름 옆에는 작은 동그라미 표시가 남아 있었다. 연화마을 몇몇 분들은 한 달치를 모아서 주셨다. 바람이 한번 지나갔다. 장부 귀퉁이가 조금 들렸다. 진우는 손으로 눌렀다. 잠깐 장부를 들여다봤다가 다시 덮었다.

 

 

서윤이 나왔다.

 

열 살쯤 된 아이였다. 장갑을 끼고 목도리를 하고 있었다. 가방을 메고 있는 걸 보면 학교 가기 전인 것 같았다. 아이는 희망호 쪽으로 오더니 갈범이부터 찾았다. 진우가 평상 아래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서윤이 몸을 숙여 들여다봤다. 갈범이가 눈을 반쯤 뜬 채 안쪽에 앉아 있었다.

 

"오늘 추워서 그런가봐."

 

서윤은 가방을 뒤적이더니 초코파이 하나를 꺼냈다. 포장지가 조금 구겨져 있었다. 이 초코파이 드릴 거예요. 할머니 퇴원하면요. 진우는 잠깐 그 말을 들었다. 서윤은 당연하다는 듯 초코파이를 다시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학교 쪽으로 걸어갔다. 장화 소리가 흙길 위에서 통통통 울렸다.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갔다.

 

장화 소리, 슬리퍼 소리, 운동화 소리가 차례로 멀어졌다. 희망호 앞은 조금씩 조용해졌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비닐 봉지 하나가 짐칸 안에서 흔들렸다. 멸치 냄새가 바람을 타고 조금 퍼졌다가 사라졌다.

 

평상 위로 아침 햇빛이 조금씩 내려오기 시작했다. 방석 위에도 빛이 걸렸다. 꽃무늬 방석이 빛 안에서 조용히 있었다. 누가 앉아 있지 않았지만 금방이라도 누가 나올 것 같은 자리였다. 진우는 그 방석을 한동안 봤다.

 

성당 십자가 끝에도 희미한 빛이 걸렸다. 멀리서 닭 우는 소리가 한번 들려왔다.

 

갈범이가 평상 아래에서 기지개를 한번 켜고는 밖으로 나왔다. 앞발을 쭉 뻗었다가 모았다. 그러더니 희망호 앞바퀴 옆에 와서 조용히 앉았다. 꼬리를 천천히 한번 흔들었다.

 

박 할머니가 계란 봉지를 들고 돌아가다가 멈췄다. 갈범이 쪽을 한번 봤다. 그러다 평상 방석을 한번 더 봤다. 아무 말 없이 다시 걸어갔다.

 

희망호 앞이 완전히 조용해졌다.

 

방석만 있었다. 갈범이만 있었다. 빛만 있었다.

 

진우는 그 자리에 잠깐 서 있었다. 짐칸 정리를 하다가 손을 멈췄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거기 있었다. 얼마나 서 있었는지는 몰랐다. 바람이 한번 지나가고 나서야 다시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우는 짐칸을 정리하고 운전석에 올랐다.

 

시동을 걸었다. 엔진이 한번 크게 떨렸다가 낮게 가라앉았다. 예전만큼 빠르게 잡히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아닐 수도 있었다. 희망호가 천천히 마을 어귀를 빠져나갔다.

 

백미러 속에서 평상이 조금씩 작아졌다. 방석이 그 자리에 있었다. 갈범이가 앞바퀴 옆 자리에 앉아 있었다. 꼬리를 한번 흔들었다. 그리고 작아졌다.

 

신호에 걸렸다. 진우는 운행일지를 무릎 위에 폈다. 오늘 판 것들을 적었다. 그리고 잠깐 멈췄다가 마지막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서윤 초코파이 아직 안 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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