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만물상
새벽 세 시
새벽 세 시.
진우는 혼자 일어났다. 불을 켜고, 찬물로 세수를 하고, 어두운 방에서 점퍼를 걸쳤다. 깨워 주는 사람도, 아침을 차려 주는 사람도 없었다. 진우는 그게 익숙했다. 몇 해를 그렇게 살았다. 혼자 일어나 혼자 나가는 거였다.
비는 새벽에 그쳤다.
시장 바닥은 아직 젖어 있었다. 진우는 물웅덩이를 피해 걸었다. 가로등 불빛이 젖은 시멘트에 길게 비쳤다. 셔터 올리는 소리, 박스 끄는 소리, 누가 가래를 뱉는 소리. 비 갠 새벽이라 공기가 한결 무거웠다. 비린내가 평소보다 진하게 깔렸다.
멸치 가게 앞에 섰다.
광주리에 비닐이 덮여 있었다. 밤새 습기 안 차게 씌워 둔 거였다. 할머니가 비닐을 걷었다.
“비 왔다 가서 눅눅혀. 그래도 속은 안 상했어.”
“네.”
진우는 중간 멸치를 한 봉지 담았다. 국물용이었다. 그리고 손이 옆 광주리로 갔다. 작은 멸치였다. 손이 먼저 갔다. 진우는 잠깐 멈췄다가, 그래도 한 줌 떴다. 봉지에 담아 묶었다. 큰 봉지 옆에 가지런히 놓았다.
습관은 쉽게 안 바뀌는 거였다.
진우는 값을 치렀다. 거스름돈을 주머니에 넣었다. 멸치 봉지를 챙겨 들고 가게를 나왔다.
두부 다섯 모. 계란 두 판. 콩나물. 파. 라면. 자잘한 것들.
진우는 빠르게 돌았다. 손이 다 외운 길이었다. 한 시간쯤 걸렸다. 짐을 다 챙기고 주유소로 갔다.

기름값과 오래된 차
“가득이요.”
기름이 들어갔다. 주유기 숫자가 올라갔다. 진우는 그 숫자를 봤다. 천천히 올라가는 숫자를. 멈췄다. 영수증이 나왔다.
진우는 그걸 받아 들었다. 숫자를 한 번 봤다. 지난주보다 올라 있었다. 기름값은 자꾸 올랐다. 한 번 오르면 안 내렸다. 진우는 영수증을 반으로 접었다. 또 반으로 접었다. 작게 접어 점퍼 안주머니에 넣었다. 안주머니에는 그런 영수증이 몇 장 더 있었다. 접힌 채로.
공터로 돌아왔다.
짐을 실었다. 무거운 건 아래, 가벼운 건 위. 계란은 제일 위. 멸치 봉지는 운전석 옆. 진우는 운전석에 올라 열쇠를 꽂았다.
돌렸다.
크르릉.
안 걸렸다. 진우는 한 박자 쉬었다가 다시 돌렸다. 크르릉. 또 안 걸렸다. 계기판 불이 들어왔다 나갔다. 진우는 입을 한 번 다물고, 세 번째로 돌렸다. 부르릉, 하고 한참 만에 걸렸다. 엔진이 떨다가 천천히 자리를 잡았다.
그때 멸치 할머니가 박스를 들고 나왔다. 가게 앞에 박스를 내려놓다가, 진우 쪽을 봤다.
“차 소리가 왜 그래.”
“……”
“이상한데. 어디 고장 난 거 아녀?”
“괜찮아요.”
진우는 웃었다. 창문을 내리고, 웃으면서 손을 한 번 들어 보였다.
“오래돼서 그래요. 아직 잘 가요.”
“그려? 조심혀.”
할머니가 박스를 정리하러 돌아섰다. 진우는 창문을 올렸다. 웃음이 천천히 가셨다. 진우는 안주머니를 한 번 만졌다. 접힌 영수증들이 만져졌다. 진우는 기어를 넣었다.
산길
산으로 들어섰다.
비는 그쳤는데 길은 젖어 있었다. 골짜기에서 물안개가 옅게 올라왔다. 햇빛이 안개에 부딪혀 부옜다. 길바닥에 물이 고여 있었다. 바퀴가 지날 때마다 물이 양옆으로 갈라졌다.
오르막이 시작됐다.
진우는 액셀을 밟았다.
드르륵.
또 그 소리였다. 어제도, 그제도 났던 소리. 액셀을 밟을 때만 나는 소리. 진우는 들었다. 핸들이 가늘게 떨렸다. 손바닥으로 그 떨림이 전해졌다. 발밑도 울렸다.
고개를 넘어 내리막이 왔다.
진우는 브레이크를 밟았다. 페달이 한 뼘쯤 더 들어갔다. 어제처럼. 차가 한 박자 늦게 섰다. 진우는 두 번 나눠 밟았다. 한 번, 또 한 번. 발끝에 신경이 가 있었다.
진우는 모르는 척했다.
오래된 차는 다 그렇다고. 비 와서 그렇다고. 길이 젖어서 그렇다고. 진우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발은 계속 브레이크 위에 있었다. 손은 핸들을 꽉 쥐고 있었다. 입으로 하는 생각과 몸이 하는 생각이 달랐다.
연화마을
연화마을은 조용했다.
비가 갠 뒤라 마당마다 빨래가 널려 있었다. 느티나무 잎에서 아직 물이 떨어졌다. 진우는 차를 느티나무 아래에 댔다. 확성기를 들었다.
“날이 갰어요오. 천천히 나오세요오. 오늘은 안 미끄러워요오.”
목소리가 분지에 퍼졌다. 메아리가 돌아왔다.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어르신들이 하나둘 나왔다. 박 할머니가 우산 없이 느릿느릿 걸어왔다. 저쪽에서 서윤이가 뛰어나왔다. 우비는 안 입고 있었다. 날이 갰으니까.
진우는 천막을 걷고 물건을 펼쳤다.
평상에는 방석이 그대로 있었다. 그 옆에 콩 바구니도 그대로였다. 콩은 까다 만 채였다. 진우는 그쪽을 한 번 봤다. 오늘은 길게 보지 않았다. 물건 펴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희망호 엔진은 도착해서도 한참 떨었다.
시동을 끄지 않고 잠깐 둔 거였다. 부르르릉, 하는 소리가 평상까지 들렸다. 진우는 그제야 시동을 껐다. 끄고 나니 마을이 더 조용해졌다.
최병수의 경고
최병수가 평상 쪽으로 오다가 멈췄다.
희망호를 봤다.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았다. 시동은 이미 꺼졌는데, 최병수는 차 쪽으로 걸어갔다. 천천히 차를 한 바퀴 돌았다. 보닛 앞에 서서, 주먹으로 보닛을 두어 번 두드렸다. 통, 통. 소리를 듣는 거였다.
최병수는 진우를 형님이라 불렀다. 나이는 진우가 위였다. 최병수가 이 마을에 처음 내려왔을 때, 진우가 이삿짐을 날라 줬었다. 서울서 내려온 최병수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트럭 한 대 분량의 살림을, 진우가 마을 입구에서 집까지 같이 옮겼다. 무거운 건 진우가 들었다. 그때부터였다. 최병수는 진우를 형님이라 불렀다.
“형님.”
“왜.”
“이 차, 정비소 가야겠는데.”
진우는 계란을 봉지에 담다 말고 웃었다.
“아직 탈 만해.”
최병수는 웃지 않았다.
최병수가 보닛을 열었다.
진우가 말릴 새도 없었다. 척, 하고 보닛이 올라갔다. 안에서 후끈한 김이 올라왔다. 기름 냄새가 났다. 뜨거운 쇠 냄새. 묵은 먼지 냄새. 최병수가 얼굴을 가까이 댔다.
최병수는 서울에서 정비 일을 한 사람이었다. 손이 거칠고 컸다. 그 손이 엔진 위를 천천히 더듬었다. 여기저기 만졌다. 벨트를 손가락으로 눌러 봤다. 호스를 잡아 흔들어 봤다. 어디 부품 하나를 손톱으로 긁어 봤다.
진우는 옆에서 그걸 봤다.
최병수의 손을 따라 진우의 눈도 움직였다. 벨트를 누르면 벨트를 보고, 호스를 흔들면 호스를 봤다. 진우는 매일 이 엔진을 봐도 뭐가 뭔지 몰랐다. 그냥 까만 쇳덩이였다. 최병수의 손이 닿는 데마다, 그게 무슨 부품인지 진우는 그제야 알았다. 최병수한테 엔진은 글씨처럼 읽히는 모양이었다. 진우한테는 끝까지 까만 쇳덩이였다.
“형님.”
“왜.”
“이거 벨트 다 됐어. 갈라졌네. 봐.”
최병수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진우가 고개를 숙여 봤다. 검은 벨트에 잔금이 가 있었다. 거미줄처럼.
“이거 끊어지면 길에서 차 선다. 산길에서 끊어지면…….”
최병수가 말을 멈췄다.
진우는 아무 말도 안 했다.
“브레이크 패드도 다 닳았을 거야. 소리 들어 보니까. 페달 깊지?”
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게 대답이었다.
최병수가 보닛 안을 더 들여다봤다. 손으로 부품을 하나하나 짚었다. 입으로 작게 셈을 했다. 벨트, 패드, 그리고 또 뭐. 최병수의 입술이 움직였다. 숫자를 세는 것 같았다.
“형님, 이거 다 갈면…….”
최병수가 액수를 말했다.
진우는 그 숫자를 들었다. 안주머니의 영수증들이 떠올랐다. 기름값. 물건값. 그리고 이것. 진우는 잠깐 말이 없었다.
“……다음 달에 하지.”
진우가 말했다.
최병수는 진우를 봤다. 진우는 최병수를 안 봤다. 계란 봉지를 묶고 있었다. 손이 조금 빨라졌다.
둘 다 알았다. 다음 달에도 안 할 거라는 걸.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이 빠듯해서. 이걸 고치면 저게 빠듯해지고, 저걸 채우면 이게 밀리는 거였다. 진우는 그렇게 몇 달을 미뤄 왔다. 최병수도 그걸 알았다. 알아서, 더 말하지 않았다.
최병수가 자기 트럭으로 갔다. 공구함에서 렌치를 꺼내 왔다. 다시 보닛 안으로 손을 넣었다. 어디 풀린 데를 찾아 조였다. 끽, 끽. 두어 번 돌렸다. 손에 힘을 줬다. 팔뚝에 핏줄이 섰다.
“일단 조여 놨어. 이거 헐거워서 진동이 더 났던 거야.”
“……”
“근데 형님. 이건 임시야. 임시. 며칠 못 가. 안에 갈 건 따로 갈아야 돼. 알지?”
“……”
“호미로 막을 거 미루면 가래로도 못 막는 거여. 정비 바닥에서 그거 수도 없이 봤어. 작을 때 봐 두면 몇 푼인데, 터지고 나면 차를 통째로 갈아야 돼.”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다는 끄덕임이었다. 알면서 미룬다는 끄덕임이기도 했다.
최병수는 보닛을 천천히 내렸다. 쾅, 안 하고. 두 손으로 받쳐서 가만히. 딸깍, 하고 걸리는 소리만 났다.
“기름은 내가 한번 봐 줄게. 다음에 올 때 공구 가져올 테니까.”
“……고맙다.”
진우가 작게 말했다. 최병수는 손을 바지에 쓱 닦았다. 기름때가 묻은 손이었다. 그 손으로 자기 트럭에서 가져온 렌치를 도로 챙겼다.
박 할머니의 전구
박 할머니가 진우를 불렀다.
“강 양반.”
“네, 할머니.”
“우리 집 전구가 나갔는데.”
박 할머니가 손가락으로 자기 집 쪽을 가리켰다. 마루 전구가 나갔다는 거였다. 박 할머니는 키가 작고 허리가 굽었다. 사다리에 올라갈 수가 없었다. 자식들은 멀리 있었다. 전구 하나 갈자고 부를 수도 없었다.
“새 전구 있으세요?”
“있어. 사다 놨어. 갈 사람이 없어서.”
진우는 희망호 짐칸에서 사다리를 꺼냈다. 늘 싣고 다니는 거였다. 마을마다 이런 일이 있었다. 진우는 사다리를 들고 박 할머니를 따라갔다.
박 할머니 집은 어두웠다. 한낮인데도 마루가 컴컴했다. 전구가 나가서였다. 진우는 마루로 들어섰다. 마루는 깨끗했다. 혼자 사는 노인 집이 다 그렇듯 물건이 적었다. 작은 밥상 하나. 방석 하나. 벽에는 빛바랜 사진이 몇 장 걸려 있었다. 젊은 박 할머니, 그 옆에 누가 서 있는 사진. 지금은 없는 사람일 거였다. 사진 옆에 달력이 걸려 있었다. 약 먹는 날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동그라미가 빼곡했다.
마루에 새 전구가 비닐째 놓여 있었다. 진우는 사다리를 폈다. 올라가서 나간 전구를 돌려 뺐다. 손끝이 따뜻했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진우는 사다리 위에서 마루를 한 번 내려다봤다. 작고 조용한 마루였다. 이런 데서 박 할머니가 혼자 불도 없이 며칠을 지냈을 거였다. 진우는 새 전구를 끼웠다. 돌려 조였다.
“이제 켜 보세요.”
박 할머니가 스위치를 눌렀다. 마루에 불이 들어왔다. 노란 불빛이 어두운 마루를 밝혔다.
“아이고. 환하네.”
“네.”
“고마워. 고마워서 어쩌나.”
“별것 아니에요.”
“별것 아니긴. 나 혼자선 못 하는 건데.”
박 할머니가 진우 손을 잡았다. 늙은 손이었다. 진우는 사다리를 접었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박 할머니는 진우가 마당을 나갈 때까지 고맙다고 했다. 세 번. 네 번. 진우는 그때마다 별것 아니라고 했다. 진우한테는 정말 별것 아니었다. 전구 하나였다. 그런데 박 할머니한테는 그게 별것이었다. 혼자선 안 되는 거였다.
차 아파요?
서윤이가 왔다.
“아저씨.”
“어, 서윤이.”
“오늘도 사탕 있어요?”
진우가 사탕을 꺼내 줬다. 서윤이가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서윤이는 가방을 메고 있었다. 작은 비닐 가방. 그 안에 초코파이가 있을 거였다. 오늘은 가방을 열지 않았다. 꺼내지 않았다. 그냥 메고 있었다.
서윤이가 희망호 쪽을 봤다.
차를 한참 봤다. 그러더니 진우를 올려다봤다.
“아저씨, 차 아파요?”
진우는 잠깐 말이 막혔다.
“……왜.”
“소리가 이상해요. 아까 들어올 때. 부르르릉, 하고 떨었어요. 아픈 거 같아요.”
서윤이가 차를 가리켰다. 아이 눈에도 보였던 거였다. 어른들이 모르는 척하는 걸, 아이는 그냥 봤다. 소리가 이상하면 아픈 거였다. 서윤이한테는 그게 그렇게 간단했다.
“……조금 아파. 그래도 괜찮아.”
“병원 가야 되는 거 아니에요?”
진우는 웃었다. 웃는데 웃음이 좀 늦게 나왔다.
“차는 정비소 가는 거야. 병원 아니고.”
“그럼 정비소 가요. 아프면 가야지.”
서윤이가 말했다. 당연한 걸 말하듯이. 진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어른들은 안다고 안 가고, 아이는 모르니까 가라고 했다. 가야 하는 건 같은데.
서윤이는 사탕을 입에 물고 저쪽으로 갔다. 가방을 멘 채로.

따뜻한 보닛
갈범이가 보닛 위로 올라갔다.
엔진을 끈 지 얼마 안 돼서, 보닛이 아직 따뜻했다. 갈범이는 그 온기를 아는 거였다. 폴짝 뛰어올라 보닛 위에 자리를 잡았다.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따뜻한 데 배를 깔고 눈을 감았다.
최병수가 그걸 보고 웃었다.
“녀석, 따순 데는 잘 알아.”
진우가 갈범이를 쫓으려고 손을 뻗었다. 보닛에 흠집 날까 봐. 그러다 손을 멈췄다. 갈범이가 너무 편하게 누워 있었다. 햇빛이 보닛에 비쳤다. 갈범이 등에 햇살이 얹혔다. 진우는 손을 내렸다.
“……그냥 둬라.”
진우가 말했다. 최병수가 또 웃었다. 갈범이는 보닛 위에서 잤다. 따뜻한 엔진 위에서. 고장 난 엔진이 따뜻하긴 했다.
강 양반 차 소리가 달력이여
정 영감이 평상에 앉아 진우 쪽을 봤다.
“강 양반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꼬박꼬박 올라와. 아주 우체부보다 정확혀.”
“……”
“내가 시계가 없어도 돼. 강 양반 차 소리 들리면, 아 오늘이 화요일이구나 혀. 달력이여, 달력.”
정 영감이 껄껄 웃었다. 옆에 앉은 어르신들도 웃었다.
“근데 그게 쉬운 게 아녀. 한두 번이야 누가 못 햐. 몇 해를 한날같이 그러는 게 어려운 거지. 사람이 그 한결같은 맛에 정이 드는 거여.”
진우는 두부를 담다가 픽 웃었다.
“비 오면 안 오고 싶죠.”
“근데 왔잖여.”
“……기다리실까 봐요.”
정 영감이 진우 등을 툭 쳤다.
“그봐. 그게 사람이여.”
진우는 더 말하지 않았다. 두부 봉지를 묶었다. 묶는 손이 좀 멋쩍었다.
줄어드는 마을
평상에 사람들이 둘러앉았다.
장은 거의 끝나 가고, 어르신들이 평상에서 이야기를 했다. 진우는 짐을 정리하면서 그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막내가 그러는데, 이젠 다 전화로 시킨다대.”
“전화로?”
“휴대폰으로 눌러. 그럼 다음 날 집 앞에 와. 쌀이고 뭐고.”
“세상 좋아졌네.”
“좋긴 한데. 사람을 안 봐. 물건만 와. 갖다 놓고 가 버려.”
정 영감이 그 말을 했다. 누구를 탓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었다.
“건넛집은 비었지?”
“비었어. 영감 죽고 할멈이 아들네로 갔어. 작년에.”
“그 옆집도 비고.”
“비었지. 이제 이 동네 몇 집 안 남았어.”
어르신들이 손가락을 꼽았다. 사는 집, 빈집. 사는 집이 더 적었다. 아무도 그걸 슬프다고 안 했다. 한숨도 안 쉬었다. 그냥 셈하듯 말했다. 빈집이 몇, 사는 집이 몇. 그게 마을이 줄어드는 소리였다. 큰 소리도 아니었다. 그냥 사는 이야기였다.
진우는 콩나물 봉지를 묶었다. 묶으면서 들었다. 마을이 줄면 희망호도 줄었다. 살 사람이 줄면 팔 것도 줄었다. 진우는 그 셈을 안 했다. 안 하려고 했다. 콩나물 봉지만 묶었다.
별것 아닌 것들
장이 끝나 갈 때쯤, 어르신들이 하나둘 진우 앞으로 왔다.
손에 뭘 들고 있었다. 박 할머니는 삶은 감자를 신문지에 싸 왔다. 정 영감네 할머니는 부침개를 비닐에 담아 왔다. 누구는 김치 한 통. 누구는 찐 옥수수 두 개.
“이거 가다가 먹어.”
“점심도 못 먹고 다니잖여.”
진우는 받았다. 매번 받는 거였다. 어르신들은 물건값을 치르면서, 꼭 뭘 하나씩 쥐여 줬다. 진우 혼자 산다는 걸 알아서였다. 끼니 거른다는 걸 알아서였다.
진우는 그걸 운전석 옆에 쌓았다. 멸치 봉지 옆에. 삶은 감자가 아직 따뜻했다. 신문지 너머로 온기가 만져졌다.
“고맙습니다.”
진우가 인사했다. 어르신들은 손을 내저었다. 별거 아니라는 듯이. 진우가 박 할머니한테 별것 아니라고 했던 것처럼, 어르신들도 진우한테 별것 아니라고 했다. 별것 아닌 것들이 운전석 옆에 쌓였다.
돌아가는 길
장사가 끝났다.
어르신들이 집으로 돌아갔다. 진우는 물건을 정리해 짐칸에 실었다. 천막을 접었다. 사다리를 다시 실었다. 최병수가 옆에 와서 그걸 도왔다. 무거운 박스를 같이 들었다.
최병수가 짐칸 문을 닫아 줬다. 그러고는 진우 쪽으로 돌아섰다.
“형님.”
“왜.”
“진짜 정비소 가. 농담 아니고.”
진우가 짐칸 문을 한 번 더 눌러 닫았다.
“다음에.”
“다음에 언제.”
“……다음 달에.”
최병수가 고개를 저었다. 한 번. 천천히. 진우를 한참 봤다. 무슨 말을 더 하려다 말았다. 최병수도 알았다. 돈이 빠듯하다는 걸. 말로 한다고 돈이 생기는 게 아니라는 걸.
“산길에서 서면 큰일 나. 그것만 알아 둬.”
최병수가 그 말을 하고 돌아섰다. 진우는 “알았어” 하고 짧게 답했다. 최병수가 손녀한테 갈 두부를 들고 걸어갔다. 진우는 그 뒷모습을 봤다.
진우는 운전석에 올랐다.
열쇠를 꽂았다. 돌렸다.
크르릉.
안 걸렸다. 진우는 한 박자 쉬었다. 다시 돌렸다. 크르릉. 또 안 걸렸다. 진우는 손을 무릎에 올리고 잠깐 기다렸다. 보닛 위를 봤다. 갈범이는 어느새 내려가 있었다. 보닛이 식어서였다. 갈범이는 다시 평상 밑으로 들어갔다.
진우는 세 번째로 돌렸다.
부르릉.
걸렸다. 그런데 엔진이 길게 떨었다. 부르르르릉. 평소보다 오래. 보닛이 가늘게 울었다. 쇠 우는 소리가 났다. 진우는 핸들을 두 손으로 잡았다. 떨림이 손바닥으로 올라왔다. 발밑으로도. 시트로도. 희망호 전체가 떨었다. 멈춰 선 채로.
진우는 핸들을 쥔 채 잠시 앉아 있었다.
밖에는 갈범이가 평상 밑에 있었다. 느티나무에서 물이 떨어졌다. 평상에는 방석이 있고, 콩 바구니가 있었다. 비 갠 마당에 빨래가 널려 있었다. 박 할머니 집 마루에는 새 전구가 켜져 있을 거였다. 최병수는 두부를 들고 집에 갔을 거였다. 서윤이는 가방에 초코파이를 넣고 어딘가에 있을 거였다.
진우는 그 마을을 한 번 봤다.
엔진이 떨었다. 벨트는 갈라져 있었다. 브레이크는 헐거웠다. 진우 혼자 그 차를 끌고 산길을 오르내렸다. 매일. 혼자.
그런데 오늘은 최병수가 보닛을 봐 줬다. 박 할머니는 진우 손을 잡고 고맙다고 했다. 서윤이는 차가 아프냐고 물었다. 갈범이는 따뜻한 보닛 위에서 잤다.
진우는 시동 떨림이 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떨림이 천천히 고르게 잡혔다. 진우는 기어를 넣었다. 희망호가 한 번 끄덕, 하고 앞으로 나갔다. 진우는 느티나무 아래를 빠져나왔다. 산길로 들어섰다.
운전석 옆에는 삶은 감자가 있었다. 부침개가 있었다. 옥수수가 있었다. 아까는 따뜻했는데 이제 좀 식어 있었다. 그래도 온기가 남아 있었다. 진우는 그걸 곁눈으로 한 번 봤다.
혼자 가는 길 같았다. 진우는 늘 그렇게 생각했다. 혼자 새벽에 일어나고, 혼자 장을 보고, 혼자 산을 넘는다고. 그런데 오늘 하루를 돌아보니, 진우는 혼자가 아니었다. 차를 봐 주는 손이 있었고, 손을 잡아 주는 손이 있었고, 차가 아프냐고 묻는 작은 입이 있었다. 감자를 삶아 신문지에 싸 주는 손이 있었다.
사람은 혼자 버티는 것 같아도, 돌아보면 누군가의 손을 빌려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