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수는 그날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해도 안 뜬 새벽이었다. 최병수는 마당부터 쓸었다. 빗자루가 흙바닥을 쓰는 소리가 사각사각 났다. 마른 잎을 쓸어 한쪽에 모았다. 평소엔 안 쓸던 마당 구석까지 쓸었다. 댓돌도 물걸레로 닦았다. 신발을 가지런히 놨다.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갰다. 방바닥을 닦았다. 작은 방 하나를 더 치웠다. 거기엔 평소 안 쓰던 이부자리를 폈다. 분홍색 이불이었다. 장롱 깊이 넣어 뒀던 거였다. 최병수는 그걸 꺼내 햇볕에 한번 털었다. 먼지가 폴폴 날렸다.
냉장고를 열었다. 안을 들여다봤다. 한참 봤다. 우유가 있나, 계란이 있나, 애가 먹을 게 있나. 최병수는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셌다. 부족한 걸 머릿속에 적었다. 두부, 계란, 그리고 또 뭐. 소시지 같은 거. 애들은 그런 거 좋아하니까.
진우가 희망호를 끌고 마을로 들어온 건 그때였다.
느티나무 아래에 차를 대고, 천막을 걷고 있었다. 최병수네 마당에서 부산한 소리가 나니까, 진우가 그쪽을 봤다. 마당이 훤했다. 빨래까지 널려 있었다.
"손님 오나?"
진우가 물었다. 최병수가 마당에서 고개를 들었다.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평소 잘 안 웃는 사람이었다.
"손녀 온다."
"……손녀."
"우리 손녀. 오늘 도시서 내려와. 지 에미가 데려다준대."
최병수가 빗자루를 세워 놓고 손을 털었다. 그러고는 또 마당을 한 번 둘러봤다. 뭐 빠진 게 없나 보는 거였다. 진우는 그 모습을 잠깐 봤다. 최병수가 저렇게 들떠 있는 건 처음 봤다.
진우가 물건을 마저 펼쳤다.
장사를 시작하려고 운전석으로 가서 시동을 한번 껐다 켰다. 짐칸 냉장 칸을 돌리려면 시동이 걸려 있어야 했다.
열쇠를 돌렸다.
크르릉. 안 걸렸다. 진우는 한 박자 쉬었다가 다시 돌렸다. 크르릉. 또 안 걸렸다. 세 번째에 부르릉 걸렸다. 엔진이 떨었다. 액셀을 살짝 밟자 드르륵, 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였다. 며칠째 같은 소리.
최병수가 마당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
빗자루를 내려놓고 느티나무 쪽으로 왔다. 보닛 앞에 서서 귀를 기울였다. 미간이 좁아졌다.
"형님."
"왜."
"그 차, 진짜 정비소 가야 혀. 내가 저번에 임시로 조여 놓은 거, 그거 벌써 또 풀렸어. 소리 들어 보면 알아."
"……며칠만 더 타고."
"그 며칠이 무서운 거여."
최병수가 보닛을 손바닥으로 한 번 짚었다. 따뜻했다.
"멀쩡하다 멀쩡하다 하다가, 어느 날 산 중턱에서 딱 서. 그땐 며칠이고 뭐고 없어. 형님 혼자 그 산길에서 어떡할 거여."
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시동을 끄지 않고 그냥 뒀다. 엔진이 부르르 떨면서 돌았다. 진우는 계란을 봉지에 담기 시작했다. 손이 좀 빨라졌다. 최병수도 차 얘기는 더 안 했다. 오늘은 손녀 오는 날이었다.
최병수가 희망호 짐칸을 들여다봤다. 물건을 사러 온 거였다.
"강 양반, 소시지 있나."
"소시지요? 있어요."
진우가 짐칸에서 소시지를 꺼냈다. 최병수가 받아 들었다. 그러고는 또 골랐다.
"우유도 한 통. 계란도 한 판. 애가 아침에 계란 좋아햐. 삶아 주면 두 개씩 먹어."
"네."
최병수가 이것저것 골랐다. 평소엔 두부 한 모 사 가던 사람이었다. 오늘은 양손이 모자랐다. 진우가 봉지에 담아 줬다.
"빵은 없나? 애들 좋아하는 거. 크림 든 거."
"오늘은 안 가져왔어요. 다음에 올 때 챙겨 올게요."
"그려. 다음에 또 와. 서아 있을 때 와서, 빵 좀 가져와."
최병수가 봉지를 들었다. 묵직했다. 손녀 하나 온다고 냉장고를 통째로 채우는 거였다. 진우는 그 봉지를 보고 잠깐 웃었다. 최병수가 봉지를 들고 마당으로 갔다. 걸음이 빨랐다.
손녀가 온 건 점심때쯤이었다.
마을 입구에 흰 승용차가 들어왔다. 도시 차였다. 깨끗한 차였다. 차가 느티나무 앞에 서고, 뒷문이 열렸다. 작은 아이가 내렸다.
일곱 살쯤이었다. 노란 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양쪽으로 묶었다. 발에는 반짝이는 운동화. 아이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주위를 둘러봤다. 눈이 동그래졌다.
"최서아, 할아버지한테 인사해야지."
운전석에서 아이 엄마가 내리며 말했다. 최병수가 마당에서 뛰어나왔다. 앞치마를 두른 채였다.
"아이고, 우리 서아 왔어?"
서아가 최병수를 봤다. 잠깐 낯설어하다가, 그래도 다가갔다. 최병수가 아이를 번쩍 안았다. 아이가 까르르 웃었다.
엄마는 오래 있지 않았다. 짐을 내려놓고, 서아한테 몇 마디 당부하고, 다시 차에 올랐다. 일이 바쁜 모양이었다. 차가 왔던 길로 돌아갔다. 서아가 손을 흔들었다. 차가 안 보일 때까지 흔들었다.

최병수가 손녀 서아를 안아 올리는 장면
차가 사라지자, 서아는 다시 마을을 둘러봤다.
집 열두 채. 느티나무. 평상. 빨래. 흙길. 서아의 눈이 그걸 하나하나 훑었다. 도시에는 없는 것들이었다. 서아가 최병수를 올려다봤다.
"할아버지, 편의점은 어디 있어?"
최병수가 웃었다.
"없어."
서아의 눈이 커졌다.
"없어? 그럼 치킨집은?"
"그것도 없어."
"……아이스크림은?"
"그것도 없어. 근데 강 양반 차에 가면 하드는 있어."
최병수가 희망호 쪽을 가리켰다. 서아가 그쪽을 봤다. 누런 트럭 한 대. 서아는 편의점도 치킨집도 없는 마을이 잘 믿기지 않는 얼굴이었다. 입을 약간 벌리고 마을을 다시 봤다. 정말 아무것도 없나, 확인하는 것처럼.
서윤이가 평상 쪽으로 왔다.
방송 소리를 듣고 나온 거였다. 그러다 낯선 아이가 있는 걸 봤다. 노란 원피스를 입은 아이. 서윤이는 멈춰 섰다. 둘이 서로를 봤다.
서윤이는 마을에서 늘 혼자였다. 또래 아이를 본 적이 없었다. 서아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잠깐 말없이 서로를 봤다. 서아는 서윤이의 흙 묻은 신발을 봤다. 서윤이는 서아의 반짝이는 운동화를 봤다.
"너 누구야?"
서아가 먼저 물었다.
"나 서윤이. 너는?"
"나 서아. 도시에서 왔어."
"도시?"
"응. 아파트 살아. 너는 어디 살아?"
"저기."
서윤이가 산 쪽 집을 가리켰다. 서아가 그쪽을 봤다. 마당이 있는 집이었다. 아파트가 아니었다.
"마당 있어?"
"응."
"우와."
서아가 부러운 얼굴을 했다. 서윤이는 그게 부러운 건지 몰랐다. 서윤이한테는 마당이 그냥 마당이었다.
"여기 진짜 편의점 없어?"
"편의점이 뭐야?"
서윤이가 물었다. 이번엔 서윤이가 모르는 거였다. 서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편의점 몰라? 막 과자 있고 음료수 있고 삼각김밥 있고. 밤에도 불 켜져 있고. 아무 때나 가서 살 수 있어."
"여기 그런 거 없어. 과자는 아저씨 차에 있어."
"무슨 아저씨?"
"만물상 아저씨. 트럭 타고 오는. 일주일에 한 번 와."
"일주일에 한 번? 그럼 그 사이엔 과자 못 사?"
"응."
서아가 입을 벌렸다. 서윤이는 그게 왜 놀랄 일인지 몰랐다. 서윤이한테는 일주일에 한 번이 당연했다. 과자는 원래 그렇게 사는 거였다. 먹고 싶을 때 못 먹고, 아저씨 오는 날을 기다리는 거였다.
"그럼 심심하면 뭐 해?"
서아가 물었다.
"갈범이랑 놀아. 아니면 산에 가. 개울에서 물고기도 봐."
"물고기? 진짜 물고기?"
"응. 송사리. 손으로 잡을 수도 있어."
서아의 눈이 커졌다. 이번엔 놀란 게 아니라 신기한 얼굴이었다. 도시에는 손으로 잡는 물고기가 없었다. 서아가 서윤이를 다시 봤다. 흙 묻은 신발을 신은 아이를. 아까는 촌스러워 보였는데, 이제는 뭔가 아는 게 많아 보였다.
둘은 그렇게 한참 어색했다. 그런데 오래가지 않았다. 갈범이가 평상 밑에서 나오자, 둘 다 동시에 그쪽을 봤다.
"고양이다!"
서아가 소리쳤다. 갈범이한테 다가갔다. 서윤이도 따라갔다.
"얘 이름 갈범이야. 줄무늬 있어서."
"만져도 돼?"
"몰라. 갈범이 마음이야."
갈범이는 두 아이를 한 번 보더니, 슬쩍 자리를 옮겼다. 두 아이가 따라갔다. 갈범이가 또 옮겼다. 또 따라갔다. 어느새 둘은 갈범이를 따라 같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어색한 건 사라지고 없었다. 아이들은 그랬다. 고양이 한 마리면 친구가 됐다.
갈범이가 평상 쪽으로 달아났다.
두 아이가 그 뒤를 쫓았다. 서아가 앞장섰다. 갈범이가 평상 밑으로 쏙 들어갔다. 서아가 평상 쪽으로 달려들었다.
발이 평상 옆을 스쳤다.
콩 바구니가 흔들렸다.
평상 옆에 놓인 대나무 바구니였다. 그 안에 콩이 들어 있었다. 까다 만 콩. 서아의 발이 바구니를 건드렸다. 바구니가 쓰러질 듯 기울었다. 콩이 쏟아졌다. 또르르, 또르르. 평상 바닥으로 콩알이 굴렀다. 깍지도 몇 개 떨어졌다.
"앗."
서아가 멈췄다.
서윤이도 멈췄다. 서윤이의 얼굴이 굳었다. 서윤이는 얼른 평상으로 가서 굴러떨어진 콩을 주웠다. 하나하나. 바닥에 흩어진 콩알을 손바닥에 모았다. 깍지도 주웠다. 그러고는 바구니에 도로 담았다. 조심조심.
"그거 김 할머니 거야."
서윤이가 말했다.
서아가 그 옆에 쪼그려 앉았다.
"김 할머니가 누구야?"
서윤이가 손을 멈췄다. 콩을 쥔 채로. 서윤이는 잠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작게 말했다.
"콩 까던 할머니. 여기 평상에서."
"근데 지금은 없어?"
"……응. 지금은 없어."
"어디 갔는데?"
서윤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콩을 마저 바구니에 담았다. 깍지를 가지런히 놨다. 서아는 그 바구니를 봤다. 까다 만 콩을. 주인이 안 보이는 바구니를. 서아는 더 묻지 않았다. 어린아이였지만, 더 물으면 안 될 것 같은 걸 느낀 모양이었다. 서아도 같이 콩 한 알을 주워 바구니에 넣었다.
두 아이가 콩 바구니 앞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갈범이는 어느새 평상 위로 올라와, 그 모습을 내려다봤다.

서윤과 서아가 쏟아진 콩을 함께 줍는 장면
평상에 어른들이 모였다.
장이 끝나 가고, 어르신들이 평상에 둘러앉았다. 서아가 왔다는 소식에 다들 한마디씩 했다. 정 영감이 서아를 보며 껄껄 웃었다.
"아이고, 병수 손녀가 이렇게 컸어? 도시 애라 그런가 뽀얗네."
"인사혀, 서아야. 정 할아버지셔."
서아가 꾸벅 인사했다. 박 할머니가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줬다. 서아가 받아 들고 또 인사했다.
정 영감이 말했다.
"요새 애들은 학교 가면 휴대폰부터 본다대. 우리 손주도 그려. 밥 먹으면서도 보고, 길 가면서도 보고. 내가 옆에서 말을 혀도 못 들어. 그 쪼끄만 거 속에 뭐가 들었는지."
박 할머니가 거들었다.
"세상이 그 안에 다 들었지. 우리 어렸을 땐 동네가 세상이었는데. 산 넘어가면 딴 나라인 줄 알았어."
정 영감이 껄껄 웃었다.
"우리 땐 해 떨어질 때까지 밖에서 뛰댕겼어. 엄마가 밥 먹으라고 동네가 떠나가게 소리를 질러야 그제야 들어갔지. 요샌 나가라 해도 안 나와. 방에 틀어박혀서. 거꾸로여, 거꾸로."
어른들이 웃었다. 누구를 탓하는 웃음은 아니었다. 그냥 세상이 변한 게 신기하고, 좀 서운하고, 그런 웃음이었다.
"서아 너도 휴대폰 있어?"
정 영감이 물었다. 서아가 고개를 저었다.
"엄마가 초등학교 가면 사 준댔어요. 아직 일곱 살이라 안 돼요."
"기특하네. 요새 애들 같지 않게."
최병수가 옆에서 두부를 부치고 있었다. 마당에서 프라이팬을 내와 부치는 거였다. 기름 냄새가 평상까지 났다. 최병수가 부친 두부를 접시에 담아 평상에 올렸다.
"이거 우리 서아 주려고 부친 거여. 다들 좀 들어."
"손녀 온다고 두부를 다 부치고."
정 영감이 웃었다.
"좋아 죽네, 아주."
최병수도 웃었다. 부정하지 않았다. 서아가 두부를 하나 집어 먹었다. 호호 불어 가며. 어른들이 그걸 흐뭇하게 봤다. 두부 한 접시에 평상이 환해졌다. 아이 하나 왔을 뿐인데, 마을이 좀 달라져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평상에서 두부를 나누는 장면
서아가 평상 위를 둘러보다가, 한쪽을 봤다.
방석이 하나 있었다. 빛바랜 꽃무늬 방석. 어른들이 다 한쪽에 모여 앉았는데, 그 방석 자리만 비어 있었다. 아무도 거기 안 앉았다. 마른자리인데도.
서아가 그쪽으로 가려 했다. 앉으려고. 빈자리니까.
"거긴……."
서윤이가 말하려는데, 서아가 먼저 물었다.
"왜 저 방석 아무도 안 앉아요?"
평상이 잠깐 조용해졌다.
정 영감이 입을 다물었다. 박 할머니가 사탕 봉지를 만지작거렸다. 최병수가 두부 뒤집던 손을 멈췄다. 진우는 셈하던 손을 멈추고 그쪽을 봤다.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빗소리도 없는 날이었다. 느티나무 잎이 바람에 한 번 흔들렸다. 어디서 새가 울었다.
박 할머니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주인이 있거든."
서아가 그 방석을 봤다.
"주인이 어디 있는데요?"
박 할머니는 그 말엔 답하지 않았다. 대신 사탕을 하나 더 꺼내 서아한테 줬다.
"이거 하나 더 먹어."
서아가 사탕을 받았다. 방석에는 앉지 않았다. 박 할머니의 말이 어려웠지만, 그 자리에 앉으면 안 된다는 건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서아는 어른들 쪽으로 와서 앉았다. 빈 방석은 그대로 비어 있었다.
해가 기울 무렵, 서아가 집으로 들어갈 시간이 됐다.
최병수가 휴대폰을 꺼냈다. 서아를 느티나무 앞에 세웠다.
"서아야, 여기 서 봐. 할아버지가 사진 찍어 줄게."
서아가 느티나무 앞에 섰다. 어색하게 웃었다. 최병수가 사진을 찍었다. 한 장. 두 장. 잘 안 나왔는지 또 찍었다. 서윤이도 옆에 세워서 같이 찍었다. 두 아이가 나란히 섰다. 갈범이도 발치에 있었다.
"하나, 둘, 셋. 김치."
찰칵.
최병수가 찍은 사진을 들여다봤다. 흐뭇하게 웃었다. 손녀가 마을에 온 첫날이었다. 최병수는 그 사진을 한참 봤다. 오래 안 볼 손녀였다. 며칠 있다 또 도시로 갈 거였다. 그래서 더 찍어 두는 거였다.
서아가 최병수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갔다. 서윤이도 자기 집으로 갔다. 갈범이는 평상 밑으로 들어갔다. 마을이 다시 조용해졌다.
진우는 물건을 정리했다.
천막을 접고, 탁자를 접고, 안 팔린 물건을 짐칸에 실었다. 어르신들이 챙겨 준 것들도 있었다. 삶은 감자, 부친 두부 몇 점. 운전석 옆에 쌓였다.
운전석에 올라 열쇠를 꽂았다.
돌렸다.
크르릉. 안 걸렸다. 또 돌렸다. 크르릉. 진우는 손을 무릎에 올리고 잠깐 기다렸다. 세 번째로 돌렸다. 부르릉, 걸렸다. 그런데 엔진이 길게 떨었다. 부르르르릉. 평소보다 더 오래. 보닛이 가늘게 울었다. 진우는 핸들을 잡았다. 떨림이 손바닥으로 올라왔다.
최병수가 마당에서 나왔다. 그 소리를 들은 거였다. 서아를 방에 들여보내고, 다시 나온 거였다.
"형님."
"……"
"진짜 한번 가 보자. 정비소. 내가 같이 가 줄게. 날 잡아서. 응?"
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핸들을 쥔 채 잠깐 앉아 있었다. 엔진 떨림이 천천히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밖에는 최병수가 서 있었다. 그 뒤로 불 켜진 최병수네 집. 그 안에 서아가 있을 거였다. 도시에서 온 아이. 편의점도 치킨집도 없는 마을에 처음 온 아이. 콩 바구니를 건드리고, 빈 방석을 보고 주인이 어디 있냐고 물은 아이.
진우는 기어를 넣었다.
희망호가 한 번 끄덕, 하고 움직였다. 느티나무 아래를 빠져나왔다. 사이드미러로 최병수가 보였다. 마당에 서서 희망호를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점점 작아졌다. 길을 도는 데서 보이지 않게 됐다.
진우는 산길로 들어섰다.
엔진이 오르막에서 또 드르륵거렸다. 진우는 핸들을 잡고 산만 보고 갔다.
오늘 하루를 생각했다. 마을에 아이가 하나 늘었다. 그것뿐이었다. 큰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묻는 것마다 어른들은 말문이 막혔다. 편의점이 왜 없냐고, 방석 주인이 어디 있냐고. 어른들한테는 너무 당연해서 묻지도 않던 것들이었다. 없는 건 없는 거고, 빈자리는 빈자리라고, 그렇게 익숙해져서 잊고 살던 것들.
아이는 그걸 처음 봤다. 처음 보니까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물었다.
어른들은 익숙해져 잊고 살았지만, 아이는 처음 본 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느티나무 아래 마을의 하루를 담은 마지막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