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산길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진우는 어두운 방에서 일어나 점퍼를 걸쳤다. 창밖으로 빗소리가 들렸다. 가는 비였다. 처마 끝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일정하게 났다. 진우는 그 소리를 들으며 신발을 신었다.
희망호를 끌고 시장으로 갔다.
비가 와서 길이 어두웠다. 헤드라이트를 켰는데도 앞이 흐릿했다. 와이퍼를 켰다. 끼익, 끼익. 고무가 닳아서 유리를 깨끗하게 못 닦았다. 유리 한쪽에 물기가 줄을 그으며 남았다. 진우는 그 흐린 유리 너머로 길을 봤다. 천천히 몰았다. 평소보다 더 천천히.
시장에 도착했다.
희망호를 공터에 댔다. 시동을 끄는데, 엔진이 한 번 부르르 떨고 나서야 멎었다. 진우는 잠깐 그 소리를 들었다. 차에서 내렸다. 비를 맞으며 시장으로 들어갔다.
멸치 가게에 들렀다.
"비 오는데 일찍 나왔네."
할머니가 비닐을 걷으며 말했다. 진우는 중간 멸치를 한 봉지 담았다. 손이 또 작은 멸치 쪽으로 갔다가, 잠깐 멈추고, 그래도 한 봉지 담았다. 버릇이었다.
값을 치르고 나오는데, 할머니가 진우 뒤를 보며 한마디 했다.
"차가 영 오래됐네. 소리가 그래."
진우는 돌아보지 않고 웃었다.
"아직 잘 가요."
두부 가게에서 두부를 받고, 채소전에서 콩나물과 파를 샀다. 비가 와서 그런지 시장이 한산했다. 손님이 적었다. 상인들도 멍하니 앉아 있는 사람이 많았다.
채소전 주인이 파를 묶어 줬다.
"요즘 장사 어때요?"
진우가 물었다.
"말도 마. 사람이 줄었어. 예전엔 새벽부터 바글바글했는데."
"……"
"여기도 가게가 자꾸 비어. 저쪽 끝에 생선전 있던 자리, 거기도 비었잖여. 시장도 예전 같지가 않어."
진우는 파를 받아 들었다. 채소전 주인 말이 맞았다. 빈 가게가 늘고 있었다. 마을만 줄어드는 게 아니었다. 시장도 줄어들고 있었다. 진우는 그 생각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파를 봉지에 담았다.

주유소에 들렀다.
"가득이요."
기름이 들어갔다. 주유기 숫자가 올라갔다. 진우는 그 숫자를 봤다. 멈췄다. 영수증이 나왔다. 진우는 그걸 받아 숫자를 한 번 보고, 반으로 접었다. 또 반으로 접었다. 지갑에 넣었다. 지갑 안에는 그런 영수증이 몇 장 더 접혀 있었다.
짐을 다 싣고 공터를 나섰다.
산길로 들어섰다.
비는 그치지 않았다. 골짜기에서 물안개가 올라왔다. 길은 젖어 있었다. 빗물이 길바닥에 고였다가 바퀴 밑에서 갈라졌다. 진우는 산 쪽으로 붙어서 천천히 갔다.
오르막이 시작됐다.
진우는 액셀을 밟았다. 희망호가 끙, 하고 힘을 냈다. 그런데 소리가 평소보다 컸다. 부르릉, 하던 게 부르르르릉, 하고 거칠게 떨었다. 드르륵, 하는 소리가 끼었다. 한 번이 아니었다. 드르륵, 드르륵, 연달아 났다.
그러다 출력이 뚝 떨어졌다.
차가 한순간 힘을 잃었다. 오르막 중간에서 속도가 줄었다. 진우는 액셀을 밟았다. 반응이 한 박자 늦었다. 차가 거의 멈출 듯 느려졌다. 진우의 등에 식은땀이 났다.
여기서 서면 안 됐다.
오르막 한가운데였다. 뒤에 차도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비는 오고, 길은 미끄럽고, 휴대폰은 이런 산속에서 잘 안 터졌다. 만약 여기서 차가 멈추면, 진우는 빗속에서 혼자 차를 밀거나, 누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거나, 둘 중 하나였다. 이 산길은 하루에 차 몇 대 안 다녔다.
진우는 액셀을 조심스럽게 다시 밟았다. 엔진이 더 크게 떨었다. 부들부들. 보닛 전체가 떨렸다. 그러다 겨우, 차가 다시 힘을 받았다. 끄윽, 하고 한 번 솟구치더니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진우는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손바닥이 땀에 젖어 있었다. 핸들이 미끄러웠다.
오르막을 다 올라, 진우는 갓길에 차를 세웠다.
빗속이었다. 진우는 시동을 끄지 않고 그냥 뒀다. 엔진이 부르르 떨면서 돌았다. 진우는 핸들에서 손을 떼고 잠깐 가만히 있었다. 보닛에서 가는 김이 올라왔다. 빗물에 닿아 흩어졌다.
진우는 보닛 쪽을 봤다. 작게 혼잣말을 했다.
"……조금만 버텨라."
잠깐 그렇게 앉아 있었다. 빗소리만 났다. 와이퍼가 끼익끼익 움직였다. 엔진 떨림이 조금 가라앉는 것 같았다. 진우는 다시 기어를 넣었다. 희망호가 천천히 움직였다. 진우는 남은 산길을 더 조심해서 갔다. 한 발은 늘 브레이크 위에 얹어 두고.

연화마을에 도착했다.
진우가 느티나무 아래에 차를 댔다. 시동을 끄려는데, 엔진이 한참 떨고 나서야 멎었다. 부르르르릉, 하고. 그 소리가 마당까지 들렸다.
최병수가 마당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
하던 일을 놓고 느티나무 쪽으로 왔다. 빠른 걸음이었다. 보닛 앞에 서서 귀를 기울였다. 시동은 이미 꺼졌는데도, 최병수의 얼굴이 굳었다. 이번엔 평소처럼 농담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형님."
"……"
"이거 올라오는 소리 다 들었어. 마당까지 들렸어. 출력 떨어졌지? 오르막에서. 그렇지?"
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게 대답이었다.
"형님, 이건 미루면 안 돼. 진짜 안 돼. 오늘 같이 가."
"장 끝나고 가면 되지."
"그 장보다 형님이 먼저여."
최병수가 보닛을 손바닥으로 짚었다. 따뜻했다. 최병수는 그 손을 한참 떼지 않았다.
"형님. 이 차 산 중턱에서 서면, 그때는 정말 큰일 나. 비 오는 날 산길에서 차 서 봐. 형님 혼자 거기서 어떡할 거여. 휴대폰도 잘 안 터지는 데서."
진우는 짐칸 천막을 걷었다. 손을 움직였다. 최병수의 말을 들으면서도 물건을 펼쳤다.
"오늘 장만 하고."
"형님."
"……오늘만."
최병수가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더 말하지 않았다. 진우가 고집을 부리면 안 꺾인다는 걸 알았다. 대신 최병수는 보닛 곁을 떠나지 않았다. 진우가 장사하는 내내, 최병수는 그 차를 한 번씩 봤다. 멀리서. 마치 차가 또 무슨 소리를 낼까 지키는 것처럼.
서아와 서윤이는 개울에 가 있었다.
마을 옆으로 작은 개울이 흘렀다. 비가 와서 물이 좀 불었다. 두 아이는 개울가에 쪼그려 앉아 돌을 던지고 있었다. 갈범이도 따라와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비를 피해 처마처럼 늘어진 나뭇잎 아래에.
"이렇게 던지면 물수제비 떠."
서윤이가 납작한 돌을 골라 던졌다. 돌이 물 위를 통, 통, 통 튀었다. 세 번 튀고 가라앉았다.
"우와! 어떻게 한 거야?"
서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납작한 돌로 던져야 돼. 이렇게 옆으로."
서윤이가 던지는 법을 알려 줬다. 서아가 따라 했다. 서아의 돌은 통, 하고 한 번 튀더니 풍덩 가라앉았다.
"안 되잖아."
"자꾸 하면 돼. 나도 처음엔 안 됐어."
서아가 다시 던졌다. 또 안 됐다. 또 던졌다. 그러다 한 번, 돌이 두 번 튀었다. 서아가 펄쩍 뛰었다.
"됐다! 두 번 튀었어!"
"봐. 자꾸 하면 된댔잖아."
서아가 신이 나서 또 던졌다. 둘은 한참 돌을 던졌다. 비가 가늘게 내렸지만 아이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옷이 좀 젖어도 좋았다.
"서울엔 이런 거 없어."
서아가 말했다.
"개울 없어?"
"응. 다 아파트고 도로고. 물은 분수에만 있어. 근데 분수는 들어가면 혼나."
"분수가 뭐야?"
"물 위로 뿜는 거. 막 쏴아 하고 올라와."
서윤이가 그걸 상상해 봤다. 물이 위로 솟는 거. 신기했다.
"우와. 그거 보고 싶다."
"너 서울 오면 보여줄게. 분수도 보고, 큰 마트도 가고, 지하철도 타고."
"지하철?"
"땅속으로 다니는 기차. 엄청 빨라."
서윤이의 눈이 커졌다. 땅속으로 다니는 기차라니. 서윤이한테는 그게 개울보다 신기했다. 두 아이는 서로의 세상을 부러워했다. 서아는 개울과 산과 마당을, 서윤이는 분수와 지하철과 마트를. 각자 가진 건 시시하고, 남이 가진 건 신기했다.
갈범이가 바위에서 내려와 두 아이 사이로 왔다. 서아가 갈범이를 쓰다듬었다. 서윤이도 쓰다듬었다. 갈범이는 두 아이 사이에 앉아 가르랑거렸다. 비가 가늘게 내렸다. 개울물이 졸졸 흘렀다. 멀리서 새가 울었다. 평화로운 한낮이었다.

장이 끝나 갈 무렵, 어르신들이 평상에 둘러앉았다.
비가 그쳐서 평상이 말라 있었다. 박 할머니, 정 영감, 최병수가 앉았다. 진우는 탁자에서 셈을 하고 있었다. 두 아이는 아직 개울에서 안 왔다.
박 할머니가 무릎을 두드렸다.
"요즘은 칠십도 젊다대. 텔레비전 보면 칠십 먹은 사람이 산도 타고 그려."
정 영감이 받았다.
"칠십이 젊다니. 우리 어렸을 땐 환갑만 넘어도 노인 대접 받았는디. 하긴, 세상이 좋아져서 그런가. 잘 먹고 잘 사니께 오래 살지."
박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는 숫자라는데, 그게 맞는 거 같기도 혀."
그러다 또 무릎을 짚었다.
"근디 나이는 숫자라도, 몸은 거짓말을 안 혀. 다리가 먼저 알아. 나는 다리 아프기 시작하면서 아, 내가 늙었구나 했어."
정 영감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진우가 셈을 하다가 끼어들었다. 진우는 평소 말이 없었는데, 그날은 한마디 물었다.
"그럼 사람은 몇 살부터 노인인 거예요?"
평상이 잠깐 조용해졌다.
정 영감이 입을 열었다.
"그게 딱 정해진 게 없어. 몸이 먼저 늙는 사람도 있고, 마음이 먼저 늙는 사람도 있고. 나이는 같아도 사람마다 달러."
최병수가 끼어들었다.
"고등학교 동창 중에 아직도 공장 다니는 놈 있어. 그놈 보고 노인이라 하면 화낼 걸. 펄펄 날아다녀. 나보다 힘 좋아."
"그럼 나이는 기준이 안 되네요."
진우가 물었다. 정 영감이 고개를 저었다.
"기준이야 있어야지. 나라에서 연금도 주고 버스도 공짜로 태워 주려면, 몇 살부터다 하고 금을 그어야 혀. 안 그러면 어디 줄을 세워. 그건 그거대로 필요한 거여."
박 할머니가 거들었다.
"근디 사람을 숫자로만 나눌 순 없잖여. 칠십이라도 정정한 사람 있고, 예순인데도 몸져누운 사람 있어. 금을 긋는 건 긋는 거고, 진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또 따로 있는 거여. 숫자보다 그게 먼저지."
최병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어. 도움은 나이순이 아니라, 급한 사람한테 먼저 가야 맞지."
진우는 그 말을 들으며 콩나물 봉지를 묶었다.
"젊을 땐 노인 될 생각을 안 하잖아요."
진우가 말했다. 정 영감이 받았다.
"그러니까 준비를 못 혀. 늙는 건 누구한테나 오는디, 미리 준비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 닥쳐서야 알지. 나도 그랬고."
최병수가 말했다.
"돈만 모은다고 되는 것도 아니여."
"그럼 뭘 준비해야 하는데요?"
진우가 물었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느티나무 잎이 바람에 한 번 흔들렸다. 잎에 남아 있던 빗방울이 떨어졌다. 어디서 새가 울었다.
박 할머니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람."
진우가 박 할머니를 봤다.
"늙어서 돈 없는 것도 서럽지만, 더 무서운 건 곁에 아무도 없는 거여. 아파 누웠는데 물 한 그릇 떠다 줄 사람이 없는 거. 그게 제일 무서워. 돈으로도 그건 못 사."
정 영감이 조용히 말했다.
"사람이 참 이상혀. 늙을 준비는 그래도 좀 하는디, 외로울 준비는 못 햐. 돈은 모아도 사람은 못 모으거든."
평상이 조용해졌다.
"덕을 베풀고 살면 곁에 사람이 남는 거고, 자기만 챙기고 살면 늙어서 혼자여. 옛말 그른 거 하나 없어. 사람 곁에 사람이 있어야 안 외로운 거지."
정 영감은 그 말을 하고 더 안 늘렸다. 입맛을 다시고 먼 산을 봤다.
박 할머니가 작게 보탰다.
"그려. 늙고 병든 것보다, 늙고 외로운 게 더 서러운 거여."
최병수가 보탰다.
"그래서 한동네 살면 서로 들여다보는 거여. 옆집 어른 아프면 죽 한 그릇 쒀다 주고, 무거운 거 있으면 들어 주고. 그래야 나 늙어서 아플 때도 누가 와 보지. 정도 품앗이여. 주고받는 거여."
진우는 그 말을 들으며 손을 멈췄다. 진우가 마을마다 하는 게 그거였다. 전구 갈아 주고, 무거운 거 들어 주고. 그러면 어르신들이 감자를 삶아 주고 두부를 부쳐 줬다. 주고받는 거였다. 진우는 그걸 한 번도 품앗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아무도 말을 안 했다. 한낮의 평상에 바람만 지나갔다. 느티나무 그늘이 평상에 어른거렸다.
진우는 멀리 희망호를 봤다.
느티나무 아래에 선 누런 트럭. 운전석은 비어 있었다. 진우는 그 빈 운전석을 봤다. 매일 혼자 앉는 자리였다. 새벽에 혼자 일어나 혼자 그 자리에 앉고, 혼자 산을 넘는 거였다. 진우는 자기가 그 운전석에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 늙어서도 그러고 있을까. 진우는 그 생각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콩나물 봉지만 묶었다.
사람은 늙어서 도움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평생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지도 몰랐다.

해가 기울었다. 진우가 떠날 채비를 했다.
천막을 접고, 탁자를 접고, 안 팔린 물건을 짐칸에 실었다. 그때 최병수가 마당에서 나왔다. 손에 작은 봉지를 들고 있었다.
"형님."
"왜."
"이거 삶은 감자여. 운전하다 배고프면 먹어."
진우가 봉지를 받았다. 아직 따뜻했다. 신문지 너머로 온기가 만져졌다.
"고맙네."
진우가 웃었다. 최병수도 웃었다. 그러다 최병수가 그 웃는 얼굴 그대로 한마디 했다.
"고마우면 정비소부터 가."
진우가 픽 웃었다.
"……알았어."
"알았다고만 하지 말고, 진짜 가. 날 잡아서. 내가 같이 가 준다니까."
"알았다니까."
두 사람이 같이 웃었다. 최병수가 진우 어깨를 한 번 툭 쳤다. 진우는 감자 봉지를 운전석 옆에 놨다. 멸치 봉지 옆에. 따뜻한 게 차 안에 하나 있었다.

진우가 운전석에 올랐다.
열쇠를 꽂고 돌렸다. 크르릉. 안 걸렸다. 또 돌렸다. 크르릉. 진우는 잠깐 기다렸다가 세 번째로 돌렸다. 부르릉, 걸렸다. 엔진이 한참 떨다가 자리를 잡았다.
희망호가 느티나무 아래를 빠져나왔다. 진우는 사이드미러를 봤다. 최병수가 마당에 서서 차를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점점 작아졌다.
산길로 들어섰다.
비는 그쳐 있었다. 구름이 걷히고, 노을이 산을 물들였다. 젖은 길에 노을빛이 비쳤다. 산이 붉게 타올랐다. 골짜기에 남은 물안개가 노을에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오르막이 시작됐다.
진우는 액셀을 밟았다. 희망호가 끙, 하고 올라갔다. 그러다 또 그 소리가 났다.
드르륵—
엔진이 크게 한 번 떨었다. 출력이 잠깐 흔들렸다.
이번에는 진우도 모른 척하지 않았다.
진우는 속도를 줄였다. 계기판을 봤다. 바늘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진우는 그 바늘을 한참 봤다. 평소엔 안 보던 거였다. 늘 모른 척했던 거였다. 오늘은 봤다. 진우는 계기판을 보고, 보닛 쪽을 보고, 다시 길을 봤다.
진우는 조용히 말했다.
"……조금만 더 버텨라."
전처럼 외면하는 혼잣말이 아니었다. 차한테 하는 말이면서, 자기한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진우는 핸들을 두 손으로 잡았다. 한 발은 브레이크 위에 얹었다. 희망호가 부들부들 떨면서 천천히 오르막을 올랐다.
노을이 산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운전석 옆에는 최병수가 준 삶은 감자가 있었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진우는 그걸 곁눈으로 한 번 봤다.
오늘 하루를 생각했다. 시장 상인은 차 오래됐다고 했고, 최병수는 정비소 가라고 했고, 어르신들은 곁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다들 진우를 한마디씩 걱정했다. 진우는 늘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하루 그 혼자를 걱정해 주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다.
차도 늙고, 진우도 그 차와 같이 산을 넘으며 나이를 먹었다. 둘 다 언제까지 버틸지 몰랐다. 그런데 그 차가, 그 진우가 아직 버티는 건, 어쩌면 혼자 버티는 게 아닐지도 몰랐다.
사람도 기계도 오래 버티는 힘은, 결국 누군가가 곁에서 걱정해 주는 마음인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