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만물상 · 제6회
배추 한 포기의 여행
새벽 네 시.
진우가 운전석에 올라 열쇠를 돌렸다.
크르릉. 엔진이 한 번 멈칫했다. 진우는 한 박자 쉬었다가 다시 돌렸다. 부르릉, 하고 한참 만에 걸렸다. 엔진이 떨다가 천천히 자리를 잡았다. 진우는 그 떨림을 손바닥으로 느끼며 잠깐 가만히 있었다. 그러고는 기어를 넣었다.
산길은 어두웠다.
안개가 산허리를 감고 있었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안개에 부딪혀 부옇게 흩어졌다. 진우는 천천히 몰았다. 차 안에 라디오가 작게 흐르고 있었다. 새벽 방송이었다.
오늘이 입동이라고 했다. 겨울이 시작되는 날이라고. 김장 준비하기 좋은 때라고. 아나운서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진우는 라디오를 껐다.
라디오가 말 안 해도, 진우는 알았다. 찬바람이 불면 김장철이었다. 시장이 그걸 먼저 알았고, 마을 어르신들이 그걸 먼저 알았다. 진우는 그 사이를 오가는 사람이라, 누구보다 먼저 알았다. 어둠 속에서 희망호가 산을 넘었다.

시장에 사람이 많았다.
평소 새벽보다 북적였다. 김장철이 시작돼서였다. 시장 입구부터 배추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트럭 한 대가 막 들어왔다. 배추를 가득 실은 트럭이었다. 농부로 보이는 사람이 내려서 배추를 부렸다. 밤새 달려온 모양이었다. 얼굴이 까칠하고 눈이 충혈돼 있었다. 그 사람이 배추를 한 망씩 부려 놓을 때마다 흙냄새가 올라왔다. 새벽이슬에 젖은 흙냄새. 진우는 잠깐 그 모습을 봤다. 저 배추가 어느 밭에서 왔을까. 저 사람이 봄부터 여름내 길러서, 새벽에 싣고 와 부리는 거였다.
배추는 푸른 겉잎에 흙이 묻어 있었다. 그 옆에 무가 가득했다. 하얀 무가 흙을 묻힌 채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진우는 그 사이를 걸었다.
고춧가루 냄새가 났다. 방앗간에서 막 빻은 거였다. 매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조금 더 걸으니 젓갈 냄새가 났다. 새우젓, 멸치젓. 비릿하고 짭짤한 냄새. 그 옆엔 소금 자루가 사람 키만큼 쌓여 있었다. 굵은소금이었다. 시장 전체가 김장 냄새였다. 맵고, 짜고, 비릿한.
상인들이 바빴다. 배추를 나르고, 무를 쌓고, 젓갈을 퍼 담았다. 평소엔 멍하니 앉아 있던 사람들이, 오늘은 손이 모자랐다.

멸치 가게에 들렀다.
“이제 김장철이 시작이네.”
아주머니가 멸치를 퍼 담으며 말했다. 진우는 큰 멸치를 한 봉지 골랐다. 육수용이었다. 김장 무 국물 낼 때 쓰는 거였다.
“산골은 일찍 하지요.”
“그럼. 추워지면 일 못 하니까. 미리미리 해야지.”
진우는 멸치를 받아 들고 다음 가게로 갔다.
고춧가루 가게 앞에 섰다. 주인이 막 빻은 고춧가루를 자루에 담고 있었다.
“올해 고추 농사는 괜찮았어. 햇볕이 좋아서 빛깔이 곱게 나왔어.”
주인이 고춧가루를 한 줌 보여 줬다. 빨갛고 고왔다. 진우는 그걸 한 자루 샀다. 박 할머니가 부탁한 거였다. 매운 거로.
소금 가게에서 굵은소금을 샀다. 소금 장수가 자루를 묶어 주며 말했다.
“신안 소금 들어왔어요. 간수 잘 빠진 거로. 김장 소금은 이게 좋아.”
진우는 소금 자루를 실었다. 무거웠다. 짐칸이 점점 찼다.
젓갈 가게에 들렀다. 새우젓을 한 통 샀다.
“오늘 새우젓 막 들어왔습니다. 가을 새우로 담근 거라 살이 통통해요.”
젓갈 장수가 새우젓을 퍼 보여 줬다. 분홍빛 새우가 소금에 절여져 있었다. 진우는 그걸 한 통 챙겼다. 어르신들이 곧 찾을 거였다.
짐을 다 싣고, 진우는 잠깐 짐칸을 봤다.
배추는 안 실었다. 배추는 어르신들이 직접 길렀다. 그래도 짐칸이 가득했다. 멸치, 고춧가루, 소금, 새우젓. 김장에 들어갈 것들이었다.
진우는 그것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게 다 누군가의 손에서 온 거였다. 멸치는 남해 어디서 어부가 잡은 거였다. 고춧가루는 어느 밭에서 농부가 기르고, 방앗간에서 빻은 거였다. 소금은 신안 염전에서 누가 땡볕에 말린 거였다. 새우젓은 서해 어부가 잡은 새우를 누가 소금에 절인 거였다.
진우의 트럭에 실린 건 물건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땀이었다. 진우는 그걸 산 너머 마을로 날랐다. 거기서 또 누가 그걸로 김치를 담갔다. 손에서 손으로 이어지는 거였다. 진우는 그 사이에 낀 한 사람이었다.
진우는 운전석에 올랐다.
연화마을에 도착했다.
박 할머니가 배추밭에 나와 있었다. 배추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잎을 쓰다듬었다. 겉잎을 들춰 속을 보고, 손가락으로 단단한지 눌러 봤다. 배추가 제법 속이 찼다.
서아가 밭으로 따라왔다. 무를 들고 있었다. 며칠 새 마을 아이가 다 됐다. 서아가 배추를 보며 물었다.
“배추는 왜 이렇게 커요?”
박 할머니가 허리를 폈다.
“사람 먹이려고 크는 거지. 겨우내 사람들 먹을 거니까, 이만큼 커야 혀.”
서아가 배추를 만져 봤다. 자기 머리만 한 배추였다.
“배추도 사람을 알아요?”
박 할머니가 웃었다.
“모르지. 배추가 사람을 어떻게 알어.”
박 할머니가 배추를 한 번 쓰다듬었다.
“근디 사람은 배추 덕에 산다. 이 배추 없으면 겨울을 어떻게 나. 사람이 배추한테 빚지고 사는 거여.”
서아가 배추를 다시 봤다. 잘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배추한테 빚을 진다는 게 무슨 말인지. 그래도 서아는 배추를 아까보다 조심스럽게 만졌다.

평상에 어르신들이 모였다.
장이 끝나 가고, 정 영감과 박 할머니, 최병수가 둘러앉았다. 진우는 셈을 하고 있었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김장으로 흘렀다.
진우가 셈을 하다 물었다.
“근데 김장은 왜 다들 같이 했어요? 혼자 담가도 되잖아요.”
최병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게. 혼자 담가도 되긴 하지.”
정 영감이 웃었다.
“혼자 담글 수는 있지.”
정 영감이 잠깐 말을 멈췄다. 그러고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근디 혼자서는 겨울을 못 났어.”
평상이 조용해졌다. 진우가 고개를 들었다. 정 영감이 먼 산을 봤다.
“백 포기를 혼자 어떻게 담가. 못 담가. 배추 절이고, 양념 버무리고, 항아리에 담고. 그걸 혼자 하다간 허리가 부러져. 그러니까 모여서 한 거여. 이 집 하고 저 집 하고, 돌아가면서. 오늘은 우리 집, 내일은 너네 집.”
박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집 김장도 옆집 아주머니가 안 오면 못 했어. 그 아주머니가 손이 빨랐거든. 배추를 척척 절였어. 나는 양념을 했고. 둘이 해야 됐어. 혼자선 안 됐어.”
최병수가 무릎을 쳤다.
“그러고 보니, 김장은 배추를 담그는 게 아니라 사람을 모으는 거였네.”
정 영감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어. 배추는 혼자 절일 수 있어도, 사람 마음은 혼자 못 절여. 같이 손 담그고 일해야 정이 들어. 김장이 그래서 좋은 거여.”
어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그런 김장을 기억하는 거였다. 옆집 아주머니랑, 동네 아낙들이랑, 같이 배추를 절이던 날들을.

서윤이와 서아가 평상으로 왔다.
김장 이야기가 신기한 모양이었다. 서윤이가 물었다.
“김치는 누가 만들어요?”
정 영감이 서윤이를 봤다.
“배추 농부가 시작하지. 봄에 씨 뿌리고, 여름내 키우고, 가을에 거두는 사람.”
“그다음은요?”
“소금 만드는 사람. 바닷물을 땡볕에 말려서 소금을 만들어. 그 소금으로 배추를 절이지.”
“그다음은요?”
“고추 농사짓는 사람. 고추를 길러서 말리고 빻아야 고춧가루가 되지.”
서아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그다음은요?”
“새우젓 잡는 사람. 바다에서 새우를 잡아서 소금에 절여야 새우젓이 돼.”
“그다음은요?”
정 영감이 잠깐 생각했다.
“옹기 만드는 사람. 김치를 담아 둘 항아리를 빚는 사람이지. 흙을 구워서 독을 만들어. 그 독에 김치를 담아야 맛있게 익어.”
서아의 눈이 점점 커졌다. 손가락을 하나씩 꼽고 있었다. 농부, 소금, 고추, 새우젓, 옹기.
“김치 하나에 사람이 이렇게 많아요?”
서아가 놀라서 물었다. 정 영감이 껄껄 웃었다.
“많지. 그것뿐인 줄 알어? 배추 나르는 사람, 빻는 사람, 파는 사람. 강 양반처럼 산 너머 갖다주는 사람도 있고.”
진우가 셈을 하다 픽 웃었다. 정 영감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김치를 먹는 게 아니여. 그 많은 사람 수고를 먹는 거여. 한 입에 그게 다 들어 있는 거지.”
서아가 들고 있던 무를 봤다. 무 하나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게, 서아한테는 신기한 모양이었다. 서윤이도 가만히 들었다. 서윤이는 조금 알 것 같았다. 자기가 먹는 김치에 그렇게 많은 손이 들어 있었다는 게.
정 영감이 하늘을 봤다.
해가 기울어 가고 있었다. 정 영감이 잠깐 말이 없다가, 조용히 말했다.
“옛사람도 그랬다더라. 사람은 혼자서는 제대로 살기 어렵다고. 서로 기대고 거들면서 사는 거라고.”
정 영감은 그 옛사람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 그냥 그 뜻만 말했다.
“김장이 딱 그 말이여. 혼자 다 못 햐. 배추 기르는 사람, 소금 만드는 사람, 젓갈 담그는 사람, 다 따로따로인데, 그게 모여서 김치 한 포기가 돼. 사람 사는 게 그려. 혼자는 못 살아. 다 누구 덕에 사는 거여.”
정 영감은 그 말을 하고 더 안 늘렸다. 입맛을 다시고 차를 마셨다.
진우는 그 말을 들으며 손을 멈췄다.
어릴 적 김장이 생각났다. 마당 가득 배추를 쌓아 놓고 동네 사람이 다 모였던 날. 어머니가 양념을 버무리고, 옆집 아주머니가 배추를 절이고, 진우는 아이들이랑 마당을 뛰어다녔다. 갓 버무린 김치를 수육에 싸서 한 입씩 받아먹었다. 맵다고 호호 불면서.
그 김치 맛은 기억이 안 났다. 그런데 그날 마당에 모인 사람들은 기억났다. 어머니가 고춧가루 묻은 손으로 웃던 얼굴도. 지금은 그 마당이 없었다. 그 사람들도 다 흩어졌다. 진우는 이제 혼자 밥을 먹었다.
진우는 그 생각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콩나물 봉지만 묶었다. 손이 좀 느려져 있었다.

해가 기울었다. 진우가 떠날 채비를 했다.
어르신들이 김장 물건을 미리 사 갔다. 멸치, 고춧가루, 소금, 새우젓. 박 할머니도 멸치 한 봉지와 새우젓, 매운 고춧가루를 챙겼다.
“강 양반, 고춧가루 매운 거로 잘 가져왔네. 고마워.”
“네. 빛깔도 곱더라고요.”
“우리 집 양반이 매운 걸 좋아했어. 김치가 맵싸해야 밥을 잘 먹었지.”
박 할머니가 그 말을 하고 잠깐 멈췄다. 집 양반은 오래전에 떠난 사람이었다. 박 할머니는 혼자 김장을 하면서도, 떠난 사람이 좋아하던 매운 고춧가루를 찾았다. 진우는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냥 고춧가루 자루를 박 할머니 쪽으로 한 번 더 밀어 줬다.
진우는 물건을 정리했다. 짐칸에 안 팔린 것들을 싣고, 천막을 접었다. 운전석 옆엔 어르신들이 챙겨 준 삶은 고구마가 있었다.
진우가 운전석에 올랐다.
열쇠를 돌렸다. 크르릉. 안 걸렸다. 또 돌렸다. 크르릉. 세 번째에 걸렸다. 엔진이 한참 떨었다. 진우는 핸들을 잡고 그 떨림을 느꼈다.
희망호가 느티나무 아래를 빠져나왔다. 진우는 사이드미러로 마을을 봤다. 박 할머니가 배추밭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혼자 김장을 준비하러. 그 뒷모습이 점점 작아졌다.
산길로 들어섰다.
해가 기울어 노을이 졌다. 산이 붉었다. 짐칸에는 멸치, 고춧가루, 소금, 새우젓이 실려 있었다. 김장에 들어갈 것들이었다. 다 누군가의 손에서 온 거였다. 그리고 진우의 손을 거쳐, 또 누군가의 손으로 갈 거였다.
오르막에서 진우는 액셀을 밟았다. 희망호가 끙, 하고 올라갔다.
드르륵—
엔진이 크게 한 번 떨었다. 내리막에서 브레이크를 밟으니, 또 푹 들어갔다. 차가 한 박자 늦게 섰다.
진우는 핸들을 꼭 잡았다.
그러고는 차를 잠깐 세웠다. 갓길이었다. 계기판을 봤다. 바늘이 떨고 있었다. 진우는 그 바늘을 한참 봤다. 운전석 옆에 실린 김장 물건들을 봤다. 멸치, 소금, 새우젓. 다음 주에도, 그다음 주에도 산을 넘어야 할 것들이었다. 김장철 내내. 어르신들이 진우를 기다렸다. 진우가 안 오면 어르신들은 김장 물건을 못 구했다.
진우는 결심했다.
다음 장날 전에, 정비소에 가야겠다고. 최병수한테 같이 가자고 해야겠다고. 그동안 미루고 미뤘던 거였다. 그런데 이제는 미룰 수가 없었다. 브레이크가 밀리는 차로는 안 됐다. 진우 혼자 타는 거면 모를까, 이 차에는 어르신들 겨울이 실려 있었다.
진우는 다시 기어를 넣었다.
희망호가 천천히 움직였다. 진우는 남은 산길을 조심해서 내려갔다. 브레이크를 일찍, 나눠 밟으며. 노을이 산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오늘 하루를 생각했다. 시장은 김장 준비로 북적였고, 배추 한 포기에 그 많은 사람의 손이 들어 있었다. 농부, 소금 장수, 고추 농부, 새우젓 어부, 옹기장이. 그리고 진우. 다들 얼굴도 모르는 사이였다. 그런데 그 손들이 다 모여서, 누군가의 겨울 밥상이 됐다.
진우는 어릴 적 그 북적이던 마당을 다시 떠올렸다. 김치 맛은 기억 안 나는데, 그날 모였던 사람들은 기억났다. 김치를 만든 건 배추가 아니었다. 그 김치를 같이 담그던 사람들이었다.
김치 한 포기를 만든 것은 배추가 아니었다.
서로의 겨울을 걱정한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