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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문화의 의미|함께 버무리고 나누는 겨울

이 콘텐츠는 제작 과정에서 AI의 도움을 받았으며, 운영자가 내용을 검토·수정하여 게시하였습니다.

길 위의 만물상

제8회

함께 버무린 겨울

입동이 지나고 며칠.

새벽 공기가 찼다. 입김이 하얗게 났다. 마당에 내린 서리가 발밑에서 사각거렸다. 아직 해도 뜨지 않았는데, 연화마을은 깨어 있었다.

오늘이 김장하는 날이었다.

부엌마다 불이 켜졌다. 굴뚝에서 연기가 올랐다. 어둑한 마을에 노란 불빛이 점점이 켜졌다. 물 끓이는 소리, 도마질 소리, 그릇 부딪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났다. 박 할머니네 마당이 제일 분주했다. 올해 김장은 박 할머니네 마당에서 같이 하기로 한 거였다.

새벽 연화마을에 김장 재료를 가득 싣고 들어오는 희망호

희망호가 천천히 마을로 들어왔다.

헤드라이트가 어둠을 갈랐다. 진우가 느티나무 아래가 아니라 박 할머니네 마당 앞에 차를 댔다. 짐칸이 가득했다. 고춧가루, 새우젓, 멸치젓, 굵은소금, 무, 쪽파. 김장 양념거리가 다 실려 있었다. 며칠 전부터 진우가 시장에서 조금씩 실어 나른 거였다.

배추는 마을에서 길렀다. 어르신들이 텃밭에서 여름내 기른 배추였다. 그걸 어제 소금에 절여 뒀다. 오늘은 그 절인 배추를 헹궈서, 양념에 버무리는 날이었다.

진우가 짐칸 문을 열었다. 젓갈 냄새가 확 올라왔다. 짭짤하고 비릿한 냄새. 새벽 찬 공기에 그 냄새가 더 진했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모였다.

해가 뜨기 시작했다. 산등성이가 부옇게 밝아 왔다. 그 무렵 사람들이 박 할머니네 마당으로 모였다. 다들 두꺼운 옷을 입고, 고무장갑과 앞치마를 챙겨 왔다. 평소엔 평상에 띄엄띄엄 앉아 있던 사람들이, 오늘은 다 모였다.

마당에 비닐을 깔았다. 큰 고무 대야를 여럿 늘어놨다. 한쪽에선 절여 둔 배추를 헹궜다. 어제 소금에 절여 놓은 거였다. 밤새 절여져 숨이 죽어 있었다. 찬물에 배추를 씻는 손이 빨갰다. 물이 차가웠다. 그래도 다들 손을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는 무를 채 썰었다. 도마에 무가 쌓였다. 채칼이 사각사각 소리를 냈다. 누군가는 마늘을 다졌다. 마늘 냄새가 매웠다. 누군가는 쪽파를 다듬었다. 누군가는 고춧가루에 젓갈을 풀었다. 양념 통에서 매콤하고 비릿한 냄새가 올라왔다.

아이들도 한몫했다. 서아와 서윤이가 마늘 까는 걸 도왔다. 손이 작아 서툴렀지만, 그래도 깠다. 까 놓은 마늘을 박 할머니한테 가져다줬다. 심부름도 했다. 이것 좀 가져와라, 저것 좀 갖다 둬라. 아이들이 마당을 뛰어다녔다.

갈범이도 신이 났다. 사람들 사이를 누볐다. 생선 냄새, 젓갈 냄새가 나니까. 누가 밟을까 봐 "저리 가" 하면 잠깐 비켰다가 또 왔다. 마당이 북적였다. 사람 소리, 도마 소리, 물소리, 웃음소리. 마을이 살아 움직였다.

배추를 씻고 무를 썰고 마늘을 까며 함께 김장을 준비하는 마을 사람들과 아이들, 고양이 갈범이

진우는 무거운 일을 맡았다.

절인 배추가 무거웠다. 물을 잔뜩 머금어 더 무거웠다. 진우가 그걸 대야에서 건져 헹구는 쪽으로 날랐다. 한 아름씩. 허리를 쓰는 일이었다. 진우는 묵묵히 날랐다. 땀이 났다. 찬 새벽인데도 등에 땀이 뱄다.

최병수가 큰 대야를 날랐다. 양념 버무릴 대야였다. 물 받은 대야는 무거웠다. 최병수가 그걸 두 손으로 들어 옮겼다. 팔뚝에 핏줄이 섰다. 진우랑 최병수가 무거운 건 다 맡았다. 둘이 제일 젊은 축이었다.

박 할머니는 양념 간을 봤다. 버무린 양념을 손끝으로 찍어 맛을 봤다. 짠지 싱거운지. 고춧가루를 더 넣고, 젓갈을 더 풀고. 양념 맛이 김치 맛을 좌우하니까, 박 할머니가 그걸 맡았다. 평생 김장을 한 손이었다.

정 영감은 배추를 펼쳤다. 헹군 배추를 큰 채반에 펼쳐 물을 뺐다. 말없이. 정 영감은 원래 평상에선 말이 많았는데, 일할 땐 말이 없었다. 손만 움직였다. 배추를 한 포기씩 가지런히 펼쳤다. 물이 빠지게.

다들 말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손은 쉬지 않았다. 각자 자기 일을 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할 일을 알아서 했다. 평생 해 온 일이라 그랬다. 마당이 척척 돌아갔다.

해가 제법 올랐다. 잠깐 허리를 펴고 쉬는 참이었다.

마당 한쪽에 둘러앉아 숨을 돌렸다. 박 할머니가 따뜻한 차를 돌렸다. 김이 났다. 다들 손을 호호 불며 차를 마셨다. 그러다 양념 이야기가 나왔다.

박 할머니가 양념 대야를 보며 말했다.

"우리 집은 멸치젓을 넣어야 혀. 멸치젓을 넣어야 김치가 칼칼하니 깊은 맛이 나."

김 영감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여, 새우젓이 더 낫지. 새우젓을 넣어야 깔끔하고 시원혀. 멸치젓은 너무 텁텁햐."

"텁텁하긴 뭐가 텁텁햐. 그게 깊은 맛이지."

"깊긴, 비린내만 나지."

잠깐 의견이 갈렸다. 박 할머니는 멸치젓, 김 영감은 새우젓. 둘 다 평생 그렇게 담가 온 거라, 서로 자기 게 맞다고 했다.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마당이 잠깐 조용해졌다. 아이들이 어른들을 봤다.

그때 정 영감이 웃었다.

"허허. 둘 다 넣으면 될 거 아녀."

정 영감이 양념 대야를 가리켰다.

"이쪽 대야는 멸치젓, 저쪽 대야는 새우젓. 박 할머니네는 멸치젓 김치 가져가고, 김 영감네는 새우젓 김치 가져가. 뭐가 문제여."

김 영감이랑 박 할머니가 머쓱해졌다. 정 영감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김치 맛은 달라도, 겨울은 같이 나는 겨."

멸치젓과 새우젓을 두고 의견이 갈린 사람들을 정 영감이 웃으며 중재하는 장면

마당이 웃음으로 풀어졌다. 김 영감이 허허 웃고, 박 할머니도 피식 웃었다. 별것 아닌 거로 목소리를 높였구나 싶은 거였다. 다들 웃으며 다시 일어났다. 멸치젓 대야 하나, 새우젓 대야 하나. 두 대야가 나란히 놓였다. 사람들이 다시 양념을 버무리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김치를 버무렸다.

물 뺀 배추에 양념을 발랐다. 고무장갑 낀 손이 배추 잎 사이사이에 빨간 양념을 발랐다. 한 잎 한 잎. 손이 빨갰다. 양념이 장갑에 묻고, 앞치마에 튀었다. 매운 냄새가 마당에 가득했다.

여럿이 둘러앉아 했다. 한 사람이 배추를 잡고, 한 사람이 양념을 바르고. 손이 척척 맞았다. 버무린 김치는 옆 사람한테 넘기고, 그 사람이 통에 담았다. 줄줄이 이어졌다. 배추가 양념을 입고 김치가 됐다.

여러 사람이 둥글게 앉아 배추에 양념을 바르고 김치 통에 담는 모습

박 할머니가 갓 버무린 김치를 한 잎 떼어, 옆 사람 입에 넣어 줬다.

"간 좀 봐. 어뗘?"

"딱 좋네. 맛있어."

박 할머니가 또 한 잎 떼어 진우한테 줬다. 진우가 받아먹었다. 매콤하고 짭짤하고, 갓 버무린 김치라 아삭했다.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어요."

박 할머니가 흐뭇하게 웃었다. 갓 버무린 김치를 다들 한 잎씩 먹었다. 아이들한테도 줬다. 서아는 매워서 호호 불었고, 서윤이는 잘도 먹었다. 마당에 매운 냄새와 웃음이 섞였다.

점심때가 됐다. 김장하다 말고 다 같이 둘러앉았다.

박 할머니가 약밥을 쪘다. 김장날이라고 특별히 한 거였다. 따뜻한 약밥에 김이 났다. 그리고 갓 버무린 김치에, 삶은 돼지고기. 수육이었다. 김장날엔 수육을 삶았다. 갓 버무린 김치에 수육을 싸 먹는 거였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둘러앉았다. 김치전도 부쳤다. 남은 배추로 부친 거였다. 기름 냄새가 고소했다. 다들 손을 씻고 둘러앉아 먹었다.

"올해 김치 맛 좋네."

"배추가 좋아서 그려."

"날이 딱 맞아. 안 춥지도 않고, 안 덥지도 않고. 김장하기 좋은 날이여."

다들 한마디씩 했다. 갓 버무린 김치에 수육을 싸서, 약밥이랑 같이 먹었다. 따뜻한 점심이었다. 일하다 먹는 밥이라 더 맛있었다. 아이들은 김치전을 손으로 집어 먹었다. 갈범이도 수육 한 점을 얻어먹었다.

진우도 멍석 끝에 앉아 먹었다. 갓 버무린 김치에 수육을 싸서. 어릴 적 김장날이 떠올랐다. 그때도 이렇게 마당에 둘러앉아, 갓 버무린 김치에 수육을 싸 먹었다. 사람들이 북적였다. 진우는 오랜만에 그 북적임 속에 앉아 있었다. 혼자 먹던 밥이 아니었다. 진우는 그게 좋았다. 그 생각을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진우와 마을 사람들이 멍석에 둘러앉아 수육과 갓 버무린 김치, 약밥과 김치전을 나누어 먹는 모습

점심을 먹고 다시 김치를 버무렸다. 잠깐 쉬는 참에 평상 이야기가 나왔다.

진우가 김치를 통에 담다가 물었다.

"근데 김장은 왜 혼자 안 했어요? 요즘은 혼자 해도 되잖아요."

박 할머니가 양념을 버무리며 답했다.

"할 수는 있지. 요즘은 절임배추도 팔고, 양념도 팔고. 혼자 할 수도 있어."

박 할머니가 잠깐 손을 멈췄다.

정 영감이 배추를 펼치다 말고 말했다.

"혼자 김치는 담글 수 있어도, 혼자 겨울은 못 났어."

평상이, 아니 마당이 잠깐 조용해졌다. 진우가 고개를 들었다. 정 영감이 배추를 다시 펼쳤다.

"백 포기를 혼자 어떻게 담가. 못 담가. 그래서 모인 거여. 근디 모이고 보니, 김치만 담그는 게 아니더라고. 그동안 못 본 얼굴도 보고, 안부도 묻고. 그게 더 좋은 거였어."

최병수가 양념 묻은 손으로 거들었다.

"그러게. 배추보다 사람이 더 많이 필요했네. 김치야 혼자도 담그지만, 이 북적이는 건 혼자 못 만들잖여."

박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장은 음식 만드는 날이 아니여. 안부 묻는 날이여. 일 년에 한 번, 다 모여서 얼굴 보는 날. 그래서 다들 김장날을 기다린 거여."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김장날이라고 안 보이던 사람도 오고, 멀리서도 오고. 김치를 핑계로 다 모이는 거였다. 김치가 아니라 사람이 목적이었다.

정 영감이 배추를 버무리며 말했다.

"옛사람이 그랬다더라. 덕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고. 곁에 사람이 따른다고."

정 영감은 그 옛사람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 그냥 짧게 말했다.

최병수가 물었다.

"그게 왜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면, 곁에 사람이 모이게 되어 있는 겨. 평소에 정 나누고, 어려울 때 거들고, 그렇게 살면 외로울 새가 없어. 김장날 이렇게 다 모이는 것도 그 덕이여. 박 할머니가 평소에 인심을 베푸니까, 김장날 다들 와서 거드는 거지."

정 영감이 박 할머니를 보며 웃었다.

"혼자 잘난 척하고 인심 사납게 살아 봐. 김장날 누가 와서 거드나. 아무도 안 와. 혼자 백 포기 끙끙대다 허리 뿌러지지."

마당에 웃음이 났다. 박 할머니가 손사래를 쳤다.

"인심은 무슨. 그냥 사는 거지."

정 영감이 배추를 펼쳤다.

"그게 인심이여. 김장도 똑같여. 혼자 안 되니까 모이고, 모이니까 정 들고.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여."

정 영감은 그 말을 하고 더 안 늘렸다. 손만 움직였다. 진우는 그 말을 들으며 김치를 통에 담았다. 손이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서윤이와 서아가 김치 담는 걸 구경했다.

통마다 김치가 담겼다. 박 할머니네 거, 김 영감네 거, 정 영감네 거. 집집마다 통에 이름을 적어 놨다. 서윤이가 그걸 보다가 물었다.

"근데 김치를 왜 나눠 줘요? 각자 담갔는데."

박 할머니가 통에 김치를 담으며 답했다.

"우리만 먹으려고 담근 게 아니니까. 김장은 나눠 먹는 거여. 옛날부터 그랬어."

서아가 끼어들었다.

"그럼 누구 줘요?"

박 할머니가 김치를 꾹꾹 눌러 담았다.

"혼자 사는 할머니도 주고, 몸 아파서 김장 못 한 집도 주고. 멀리 사는 자식한테도 보내고. 김치가 많으면 여기저기 나누는 거여. 김장을 넉넉히 하는 게 다 그래서여. 우리 먹을 것만 하면 이렇게 많이 안 해."

서아가 통에 담긴 김치를 봤다. 통이 많았다. 한 집이 먹기엔 많아 보였다. 그게 다 나눠 줄 거라는 게, 서아한테는 신기한 모양이었다.

박 할머니가 김치 한 통을 따로 담았다.

다른 통이랑 똑같은데, 한쪽에 따로 놨다. 정성껏 담았다. 양념도 골고루 묻은 좋은 포기로 골라 담았다. 서아가 그걸 보고 물었다.

"그건 왜 따로 담아요?"

박 할머니가 그 통을 토닥였다.

"혼자 사는 이 할머니 거여. 저 산 밑에. 올해 몸이 안 좋아서 김장을 못 했어. 그래서 우리가 좀 담가 주는 거여."

"이 할머니가 누구예요?"

"우리 친구여. 나랑 같이 늙은. 젊어서부터 이 동네 같이 살았어. 근디 올해는 무릎이 아파서 못 나왔어. 김장도 못 하고."

박 할머니가 그 통을 한 번 더 토닥였다. 진우가 그걸 봤다. 따로 담은 김치 통을. 박 할머니가 친구를 위해 좋은 포기로 골라 담은 통이었다. 진우는 아무 말도 안 했다. 그 통을 가만히 봤다.

해가 기울 무렵, 김장이 끝났다.

마당에 김치 통이 줄줄이 늘어섰다. 하루 종일 버무린 거였다. 다들 허리를 두드렸다. 손이 빨갛게 부었다. 그래도 얼굴은 환했다. 한 해 김장을 끝낸 얼굴이었다. 이제 겨울 걱정은 없었다.

사람들이 자기 집 김치 통을 가져갔다. 박 할머니는 멸치젓 김치를, 김 영감은 새우젓 김치를. 서로 자기 입맛대로. 그래도 같은 마당에서 같이 담근 거였다.

진우가 김치 통 몇 개를 희망호에 실었다. 나눠 줄 김치였다. 혼자 사는 어르신들, 몸 아픈 집. 진우가 가는 길에 가져다주기로 한 거였다. 박 할머니가 따로 담은 그 통도, 진우 차에 실렸다. 산 밑 친구네 가져다줄 거였다.

진우가 통을 실었다. 무거웠다. 김치가 가득 든 통이라 묵직했다. 짐칸이 또 찼다. 진우는 그 통들을 잘 고정했다. 길에서 쏟아지지 않게.

진우가 운전석에 올랐다.

열쇠를 돌렸다. 크르릉. 안 걸렸다. 또 돌렸다. 크르릉. 세 번째에 걸렸다. 엔진이 한참 떨었다. 김치 통을 잔뜩 실어서, 차가 더 무거웠다. 엔진이 더 힘겹게 떨었다.

나누어 줄 김치 통을 희망호에 가득 싣는 진우와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마을 사람들

희망호가 박 할머니네 마당을 나섰다. 마을 사람들이 손을 흔들었다. 진우도 손을 들어 보였다.

마을 안길을 천천히 갔다. 첫 집에 김치를 내려 줬다. 몸 아픈 집이었다. 김치 통을 받고 고맙다고 했다. 진우는 다음 집으로 갔다.

내리막에서 브레이크를 밟았다.

푹 들어갔다. 차가 한 박자 늦게 섰다. 김치 통을 잔뜩 실어서, 차가 더 안 섰다. 무게 때문에 밀리는 게 더 심했다. 진우는 두 번 나눠 밟았다. 한 발은 늘 브레이크 위에 있었다. 진우는 핸들을 꽉 잡았다.

"오늘만 넘기자."

진우가 혼잣말을 했다. 자기한테 다짐하듯. 그러고는 속으로 한마디 더 삼켰다. 김치는 다 전해 줘야 하니까. 자기 한 몸 같으면 진작 차를 세웠을 거였다. 근데 짐칸의 김치가 어르신들 거였다. 몸 아픈 집, 혼자 사는 할머니. 다들 진우가 오기를 기다렸다.

김장 끝나면 고치기로 했다. 김장이 오늘 끝났으니, 이제 곧이었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됐다. 진우는 조심해서 차를 몰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산 밑 외딴집.

진우가 차를 세웠다. 박 할머니가 따로 담은 그 통을 들고 내렸다. 무릎 아파 김장 못 한 할머니네였다. 진우가 문을 두드렸다.

할머니가 나왔다. 진우가 김치 통을 내밀었다.

"박 할머니가 보내셨어요. 김장 같이 했다고."

할머니가 김치 통을 받았다. 두 손으로. 한참 그 통을 봤다. 그러고는 진우한테 고맙다고, 몇 번이나 고맙다고 했다. 진우는 별말 없이 인사하고 돌아 나왔다. 다음 갈 집이 있었다.

희망호가 다시 출발했다. 외딴집이 사이드미러에서 멀어졌다.

진우가 떠난 뒤.

할머니가 김치 통을 부엌으로 가져갔다. 뚜껑을 열었다. 빨간 김치가 가득했다. 좋은 포기로만 골라 담은 거였다. 양념이 골고루 묻은. 할머니가 김치를 한 점 떼어 입에 넣었다.

매콤하고 짭짤하고, 멸치젓 맛이 칼칼했다. 박 할머니 손맛이었다. 수십 년 같이 김장하던 그 손맛.

할머니의 눈가가 붉어졌다.

"올해도…… 나를 잊지 않았구먼."

외딴집 부엌에서 김치를 맛본 뒤 눈가가 붉어진 할머니

할머니가 김치 통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무릎이 아파 김장도 못 한 해였다. 혼자 사는 집이었다. 그런데 김치가 왔다. 친구가, 마을이, 자기를 잊지 않은 거였다. 할머니는 한참 그 김치 통 앞에 앉아 있었다.

밖에서는 희망호가 천천히 다음 집으로 향했다. 어둑해진 산길을. 김치 통을 싣고. 누군가의 겨울을 나르며.

김장은 배추를 절이는 날이 아니라, 서로를 잊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날이었다.

김장은 배추를 절이는 날이 아니라,
서로를 잊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