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여름, 《디 워》라는 영화가 극장에 걸렸다. 심형래 감독이 만든 영화였다. 약 800만 명이 봤을 정도로 당시에는 정말 말도 많고 화제도 많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19년. 그런데 얼마 전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디 워》가 넷플릭스에서 다시 사람들의 눈에 띄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같은 유럽 여러 나라에서 상위권에 올랐고, 글로벌 순위에서도 6위까지 갔다고 한다.
19년이나 지난 영화가 다시 주목받는다니, 조금 신기했다.
이 소식을 보다가 문득 어릴 때 생각이 났다. 심형래 씨와 임하룡 씨가 TV에 나오면 웃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오래된 기억인데도 다시 생각나니 괜히 좋았다.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이제 잘 기억나지 않는데, 그 사람들이 나오면 재미있었던 기억은 남아 있다. 지금도 가끔 그때가 생각난다. 그래서인지 《디 워》가 19년 만에 다시 사람들에게 보이고 있다는 소식이 조금 반갑게 느껴진다.
범이: "웅녀야, 영화는 19년 전 그대로잖여."
웅녀: "그렇지."
범이: "새로 찍은 것도 아니고?"
웅녀: "응. 필름 그대로여."
범이가 잠시 뜸을 들이다 물었다.
범이: "그럼… 영화가 변한 겨, 세상이 변한 겨?"
《디 워》에는 한국 설화 속 이무기가 등장한다. 심형래 감독은 용이 아니라 이무기를 고른 이유로, 이무기는 한국 고유의 이야기라는 점을 들었다고 한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는 아리랑이 흘러나온다. 한국의 음악을 세계에 들려주고 싶었다는 게 감독의 설명이었다. 한국적인 것을 세계에 보여주고 싶었던 선택이었다.
그런데 당시에는 이 선택이 순탄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작품성 논쟁에 애국심 논란까지 붙었다. 지금 와서 누가 맞았다고 따질 생각은 없다. 영화 평가는 여전히 각자의 몫이다.
19년이 지난 지금, 다른 장면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BTS는 정규 5집 앨범 이름을 《ARIRANG》으로 정했고, 월드투어에도 같은 이름을 붙였다.
지난 5월 미국 스탠퍼드 스타디움에서는 수록곡 'Body to Body' 중 아리랑이 흐르는 구간을 해외 관객들이 한국어로 함께 불렀다. 태극기를 들고 있던 팬들도 있었다.
BTS 때문에 《디 워》가 역주행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두 일은 그냥 따로 일어난 일이다. 다만 19년 전 국내에서조차 논쟁거리였던 그 가락을, 지금은 다른 나라 관객들이 함께 부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한국 사람으로서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든다.
범이: "우리도 팝송 부르려고 영어 가사 외웠잖여."
웅녀: "그랬지."
범이: "근디 이제 저 사람들이 우리 노래 부르려고 한국말을 배우네."
웅녀: "그러게. 세상이 참 많이 달라졌네."
범이는 잠시 생각하다 이렇게 정리했다.
범이: "우리 것이 갑자기 좋아진 게 아니라, 우리 것을 보는 사람이 많아진 걸 수도 있겄네."
그럴 수도 있다. 아리랑은 해외 관객들이 한국어로 따라 부르기 전에도 아리랑이었다. 이무기 이야기도 세계 사람들이 궁금해하면서 생긴 게 아니라, 오래전부터 우리가 가지고 있던 이야기였다.
남이 박수를 쳐준 뒤에야 귀하게 여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가진 것을 우리가 먼저 소중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범이: "남들이 좋다고 해야 좋은 게 아니었네유."
웅녀: "그렇지."
범이: "우리 것이면 우리가 먼저 아껴줘야겄네."
웅녀: "그래야 남한테 보여줄 것도 있지."
옛날 중국 문헌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하루에 천 리를 달릴 수 있는 말이라도, 그 다리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으면 마구간에서 짐이나 나르다 늙어 죽는다. 천리마는 늘 있지만, 그것을 알아보는 백락은 늘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요즘 식으로 바꿔보면 이렇다.
어떤 사람이 한 직장에서 오랫동안 단순한 일만 했다. 주변에서는 "저 사람은 특별히 잘하는 게 없다"고 봤다.
그러다 전혀 다른 일을 하게 되었는데, 예전 직장에서는 한 번도 시켜본 적 없는 그 일을 아주 잘했다.
범이: "이 사람 능력이 갑자기 생긴 겨?"
웅녀: "아니겠지."
범이: "그럼… 전에 있던 데서는 달려보라고 한 적이 없었던 거네."
웅녀: "그런 거지. 달릴 길을 못 만났던 거야."
꼭 천재여야 자기 길을 찾는 건 아닐 것이다. 사람마다 그 길을 만나는 때가 다를 뿐이다. 일찍 만나는 사람도 있고, 한참 돌아서야 만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아직인 것 같은데, 그렇다고 너무 늦은 건 아닐지도 모른다.
《디 워》의 역주행이 K문화 덕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19년 사이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세계의 풍경이 크게 달라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같은 필름이 다른 시대, 다른 관객을 만났다.
누군가는 스무 살에 자기 길을 찾고, 누군가는 마흔에 찾는다. 누군가는 인생에서 예상하지 못한 사고나 어려움을 만나, 예전과 같은 길을 갈 수 없게 되기도 한다.
나 역시 교통사고 이후 오랜 시간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예전처럼 되지 않는 것도 있고, 남들보다 늦어진 것도 있다.
아직 어렵다.
그래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꼭 예전 자리로 돌아가야만 역주행일까.
범이: "근디 사람 역주행은 뭐여?"
웅녀: "다시 잘되는 거 아닐까?"
범이: "잘된다는 게 뭔디?"
한참 생각하던 범이가 말했다.
범이: "돈이 다시 많아져야 역주행인 겨?"
웅녀: "글쎄."
범이: "사람이 다시 행복해지면… 그것도 역주행 아녀?"
돈을 많이 벌어야, 유명해져야, 사고 이전으로 완전히 돌아가야만 역주행인 건 아닐 것이다.
다시 웃을 수 있게 되는 것, 좋아하는 일을 하나 찾는 것, 아침에 일어나 할 일이 생기는 것, 가족과 평범하게 밥을 먹는 것,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는 것, 어제보다 오늘 조금 편안해지는 것.
그런 것도 충분히 한 사람의 역주행일 수 있다.
범이: "그럼 나도 역주행할 수 있겄네유?"
웅녀: "그건 모르지."
범이: "에이."
웅녀: "근디 아직 안 끝난 건 맞잖여."
범이가 잠시 생각하다 끄덕였다.
범이: "그건 그러네."
마지막으로 범이가 한마디 보탰다.
범이: "1등까지 갈 필요는 없잖여."
웅녀: "그럼 어디까지 가면 되는디?"
범이: "내가 행복한 데까지만 가면 되지."
다시 성공하는 것만 역주행은 아닐 것이다.
다시 조금 행복해지는 것.
그것도 사람의 역주행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