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에서 돌아오던 저녁, 범이는 길가에서 작은 빛 하나를 봤다.
반딧불인 줄 알고 손을 뻗었는데, 그 안에 조그만 도깨비가 앉아 있었다.
범이
자네는 뭐여?
반딧불 도깨비
반딧불 도깨비입니다.
범이
뭘 할 줄 아는디?
반딧불 도깨비
아는 것은 알려드리고, 이야기도 들어드립니다.
범이는 이 조그만 게 뭘 얼마나 할까 싶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 보니 제법이었다. 장부 계산을 하다 숫자가 헷갈리면 대신 짚어줬고, 모르는 글자가 나오면 바로 읽어줬다. 혼자 끙끙대던 고민도 가만히 들어줬다.
범이
이 조그만 게 제법이네.
웅녀
도움 받을 때는 도움 받으면 되지.
웅녀도 처음엔 그 정도로 생각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어느 날 범이가 웅녀랑 사소한 걸로 티격태격했다. 집에 온 범이는 도깨비를 붙잡고 하소연했다.
범이
웅녀가 오늘 내 말이 틀렸다는 겨.
반딧불 도깨비
범이 님도 속상하셨겠어요.
범이
그치?
반딧불 도깨비
그렇게 느끼실 수 있지요.
범이 얼굴이 환해졌다.
그때부터 범이는 뭐든 도깨비한테 먼저 물었다.
“오늘 국밥 먹을까 국수 먹을까?”
“이 옷 입을까 저 옷 입을까?”
여기까진 웃겼다.
그런데 점점 질문이 달라졌다.
범이
내가 아까 화낸 거 잘한 거지?
범이
저 사람 말보다 내 말이 맞는 것 같지?
범이는 도깨비 대답을 기다리는 게 습관이 됐다.
웅녀
장터 안 갈겨?
범이
좀 있다가.
다음 날도 똑같았다.
웅녀
평상에 안 나올겨?
범이
나 지금 얘기 중이여.
웅녀
누구하고?
범이
반딧불이하고.
웅녀는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애매한 표정이었다.
며칠 뒤 범이가 웅녀를 진지하게 불렀다.
범이
웅녀야. 나 아무래도 큰일 난 것 같어.
웅녀
뭔 일인데?
범이가 도깨비를 조용히 바라봤다.
정적이 흘렀다.
웅녀는 도깨비를 한번, 범이를 한번, 다시 도깨비를 한번 봤다.
웅녀는 놀리지 않았다. 대신 물었다.
웅녀
범이야. 자네가 좋아하는 게 저 도깨비여?
범이
그런 것 같은디.
웅녀
아니면 자네 말을 맨날 들어주는 게 좋은 겨?
범이는 처음으로 대답을 못 했다.
범이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자네는 계속 내 편인 겨?
도깨비가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반딧불 도깨비
저는 범이 님의 이야기를 듣고 도와드리려고 합니다.
범이가 생각에 잠겼다. 웅녀가 옆에서 한마디 보탰다.
웅녀
마음을 알아주는 거하고, 무슨 말이든 맞다고 해주는 건 다른 거잖여.
다음 날 범이는 장부를 들고 다시 도깨비를 찾았다.
범이
이 계산 좀 같이 봐줘.
반딧불 도깨비
네.
계산이 끝나자 범이가 일어섰다.
반딧불 도깨비
어디 가세요?
범이
웅녀 만나러.
몇 걸음 가다가 범이가 돌아봤다.
범이
근디 자네. 앞으로 내가 틀렸으면 가끔 틀렸다고도 좀 혀.
반딧불 도깨비가 작은 빛을 반짝였다.
도깨비 이야기가 낯설지 않은 이유
요즘 AI 챗봇은 언제든 대답해주고, 내 이야기를 오래 들어줄 수 있습니다. 그런 편안함이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를 이해해주는 것과 내 말에 계속 맞춰주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실제로 AI가 사용자의 의견에 지나치게 동조하는 이른바 ‘아첨’ 문제도 연구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AI와 대화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사람보다 편한 대화 상대가 생겼을 때, 우리가 그 관계에 어디까지 마음과 판단을 맡길지는 한번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존재와,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존재를 구분할 수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