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만물상 · 제9회
김치는 사람을 찾아간다
김장 다음 날 아침이었다.
연화마을에 어제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박 할머니네 마당 한쪽에 고무대야가 뒤집혀 있었다. 빨간 양념 자국이 대야 가장자리에 묻어 있었다. 아직 안 말랐다. 빨랫줄에 고무장갑이 널려 있었다. 빨간 게 묻은 채로. 마늘 까던 소쿠리, 무채 썰던 도마도 한쪽에 쌓여 있었다. 어제 온 마을이 북적였던 자리였다. 오늘 아침은 조용했다.
희망호 짐칸에 김치 통이 가지런히 실려 있었다.
어제 담근 김치였다. 마을이 같이 담가서, 혼자 사는 집이며 몸 아픈 집이며 나눠 줄 거였다. 진우가 그 통들을 하나하나 다시 확인했다. 뚜껑이 잘 닫혔는지, 단단히 고정됐는지. 산길이 험해서, 흔들리다 쏟아지면 안 됐다.
박 할머니가 마당에서 나와 그걸 봤다.
“깨지면 안 돼. 살살 가.”
“네. 천천히 갈게요.”
“그 김치가 누구 입에 들어갈 건데. 소중히 다뤄.”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치 통을 한 번 더 눌러 고정했다. 짐칸 문을 닫았다. 박 할머니가 마당에서 손을 흔들었다. 진우는 운전석에 올랐다.
· · ·
첫 번째 집은 몸이 불편한 노부부 집이었다.
할아버지가 다리가 불편해서,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 할머니도 허리가 굽었다. 두 분 다 김장 같은 건 엄두도 못 냈다. 진우가 김치 통을 들고 마당에 들어섰다.
“김치 가져왔어요.”
할아버지가 마루로 나왔다. 지팡이를 짚고. 김치 통을 받아 들었다. 통을 한 번 보더니, 웃었다.
“아이고. 올해도 우리가 김장한 셈이네.”
“마을이 같이 담근 거죠.”
진우가 말했다. 할아버지가 김치 통을 마루에 내려놨다. 무거운지 천천히.
“우리는 손가락 하나 안 댔는데, 김치가 생겼어. 이게 마을 사는 맛이여. 도시 같으면 어림없지. 누가 이런 걸 갖다줘.”
할아버지가 김치 통을 쓰다듬었다.
“우리도 왕년엔 김장 많이 했어. 자식들 줄라고 백 포기씩 했지. 마당 가득 배추를 쌓아 놓고. 온 식구가 달라붙어서. 근디 이제 우리 둘이 그걸 어떻게 햐. 손가락이 안 따라 줘.”
할아버지가 허허 웃었다. 서운한 웃음 같기도 하고, 그저 담담한 웃음 같기도 했다.
“이제는 받아먹는 신세가 됐어. 줄 때가 좋았는데. 근디 받는 것도 고마운 일이여. 받을 데가 있다는 게. 줄 사람이 있고, 받을 사람이 있고. 그게 사람 사는 거지.”
할머니가 부엌에서 나왔다. 김치 통을 보더니 얼굴이 환해졌다.
“어디 보자. 올해도 빨갛게 잘 익겠네.”
진우는 김치 통을 마루 안쪽에 들여놔 줬다. 두 노인이 그 통을 흐뭇하게 봤다. 진우는 다음 집으로 가려고 일어섰다. 할아버지가 마당까지 따라 나와 배웅했다.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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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집은 혼자 사는 이 할머니 집이었다.
어제 진우가 김치를 가져다준 집이었다. 산 너머 혼자 사는, 무릎이 아파 김장을 못 한 할머니. 박 할머니의 오랜 친구. 오늘은 다른 통을 하나 더 가져왔다. 김치가 많으니까, 넉넉히.
그런데 마당에 들어서니, 할머니가 마루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
작은 밥상이었다. 밥 한 그릇, 국 한 그릇. 평소 할머니 밥상은 늘 그랬다. 반찬이 단출했다. 혼자 먹는 밥상에 여러 가지를 차릴 일이 없었다. 김치 한 가지, 장아찌 한 가지. 그게 다였다. 누가 봐 줄 사람도 없는 밥상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밥상에 김치가 있었다. 어제 받은 김치. 빨갛고 먹음직한 김치를 종지에 수북이 덜어 놨다. 할머니가 김치를 한 점 집어 밥에 올렸다.
천천히 씹었다. 오래 씹었다. 맛을 음미하듯이.
진우는 마당 앞에서 잠깐 멈췄다. 방해하기 싫어서. 그냥 통만 내려놓고 가려고 했다.
할머니는 진우가 온 줄 몰랐다. 김치를 씹으며, 창밖을 봤다. 아침 햇살이 마당에 들었다. 할머니는 한참 창밖을 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참을. 그러더니 작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혼자 먹어도…… 혼자는 아니구먼.”
할머니가 김치를 한 점 더 집었다. 그러고는 또 천천히 씹었다. 마치 누구랑 마주 앉아 밥을 먹는 것처럼. 혼자인데, 혼자가 아닌 것처럼. 밥상 위 김치 한 종지가, 그 텅 빈 마루를 덜 쓸쓸하게 했다.
진우는 그 말을 들었다.
혼자 사는 할머니였다. 매일 혼자 밥을 먹는 할머니였다. 그런데 그 밥상에 마을이 담근 김치가 올라 있었다. 김치 한 점에, 마을 사람들 손이 다 들어 있었다. 혼자 먹어도 혼자가 아닌 거였다. 그 김치를 같이 담근 사람들이, 그 밥상에 같이 있는 거였다.
진우는 김치 통을 마루에 조용히 올려놓고, 인사만 짧게 하고 나왔다. 할머니가 더 먹고, 더 오래 그 김치를 두고 먹게. 진우는 그 집을 나서며 아무 말도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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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집은 젊은 부부 집이었다.
마을에 몇 안 되는 젊은 사람들이었다. 둘 다 일을 나가서, 맞벌이였다. 바빠서 김장 같은 건 할 시간이 없었다. 진우가 김치 통을 들고 갔을 때, 마침 아이가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아이가 김치 통을 보더니,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엄마! 할머니가 또 김치 보내셨어!”
엄마가 나왔다. 출근 준비를 하다 나온 모양이었다. 김치 통을 보고 웃었다.
“아이고. 또 신세를 졌네. 박 할머니 솜씨 좋으신데.”
“마을이 같이 담갔어요. 박 할머니 혼자 하신 거 아니에요.”
진우가 말했다. 엄마가 김치 통을 받아 들었다.
“우리는 맨날 받기만 하고. 미안해서 어쩌나.”
엄마가 아이를 봤다. 아이는 김치 통을 신기하게 보고 있었다.
“우리도 다음엔 같이 도와드리자. 엄마가 휴가 내고. 김장은 같이 하는 거래.”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진우한테 고맙다고 했다. 진우는 김치 통을 건네고 다음 집으로 향했다. 젊은 부부도 언젠가 김장에 손을 보탤 거였다. 그렇게 마을 일이 이어지는 거였다. 받은 사람이 나중에 주는 사람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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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 서는 날이라, 진우는 마을로 돌아와 장사도 했다.
평상에 어르신들이 모였다. 김치를 다 돌리고 온 진우한테, 어느 집이 어떻더냐 물었다. 진우가 짧게 전했다. 노부부가 좋아하더라, 젊은 집은 미안해하더라. 어르신들이 흐뭇하게 들었다.
그러다 최병수가 물었다.
“근데 우리도 먹을 거 빠듯한데, 왜 그렇게 남을 줘? 힘들게 담근 걸.”
박 할머니가 양념 묻은 손을 행주에 닦으며 답했다.
“다 못 먹잖여. 한 집이 그 많은 걸 어떻게 다 먹어. 나눠야 안 상하고 좋지.”
정 영감이 거들었다.
“그것도 맞고.”
정 영감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근디 그것 때문만은 아니여. 나눠야 마음이 안 상하더라.”
진우가 고개를 들었다.
“마음이요?”
“혼자만 배부르면, 입은 부른디 마음은 허전한 겨. 나 혼자 잘 먹고 잘 산다고 좋은 게 아니여. 옆집은 굶는데 나 혼자 배부르면, 그 밥이 목에 넘어가나. 안 넘어가. 같이 먹어야 마음이 편한 거여. 그게 사람이여.”
평상이 조용해졌다. 어르신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그러고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있으면 나누고, 없으면 얻어먹고. 그렇게 서로 채우며 산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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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영감이 차를 마시다 말했다.
“옛날부터 그랬어. 덕이라는 건 혼자 있는 게 아니라고.”
정 영감은 누구 말이라고 안 했다. 그냥 옛날부터 그랬다고만 했다.
“베풀면 외롭지가 않아. 남한테 잘하면, 그게 돌고 돌아 다시 와. 당장은 아니어도. 내가 어려울 때 누가 와서 거들어. 평소에 안 베푼 사람한테는 아무도 안 와. 그게 이치여.”
정 영감이 김치 한 조각을 집어 먹었다. 어제 담근 김치였다.
“이 김치도 그려. 우리가 저 집 저 집 나눠 주잖여. 그럼 우리가 어려울 때, 저 집들이 또 우리를 봐. 김치 한 통이 그냥 김치가 아니여. 정을 주고받는 거지. 그게 쌓여서 마을이 되는 거고.”
정 영감은 그 말을 하고 더 안 늘렸다. 입맛을 다시고 차를 마셨다. 진우는 그 말을 들으며 물건을 정리했다. 김치 한 통이 정을 나르는 거라는 말이, 진우 마음에 남았다. 진우는 그걸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천막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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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김치 한 통이 남았다.
골짜기 끝, 외딴집에 사는 어르신 거였다. 제일 멀었다. 진우가 그 통을 싣고 출발했다. 산길이 더 깊어지는 쪽이었다. 내리막이 길었다.
내리막에서 진우가 브레이크를 밟았다.
페달이 푹 들어갔다. 바닥까지. 그런데 차가 안 섰다. 진우가 다시 밟았다. 또 푹 들어갔다. 차가 그대로 미끄러졌다. 진우의 등에 식은땀이 났다.
뒷자리에서 김치 통이 앞으로 쏠렸다. 무게가 앞으로 쏠리면서, 차가 더 빨라졌다. 진우가 핸들을 꽉 잡았다. 브레이크를 펌프질하듯 밟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빠르게 나눠 밟았다.
겨우 차가 속도를 줄였다.
내리막 끝에서, 차가 천천히 섰다. 진우는 핸들을 잡은 채 가만히 있었다. 손바닥이 땀에 흥건했다. 심장이 뛰었다. 방금, 차가 안 설 뻔했다. 브레이크가 거의 안 들었다. 전에는 밀리기만 했는데, 오늘은 거의 안 들었다.
진우는 한참 그렇게 앉아 있었다.
쏠린 김치 통을 돌아봤다. 다행히 안 쏟아졌다. 단단히 묶어 둬서. 진우는 숨을 골랐다. 이건 정말 위험했다. 이제 며칠이고 뭐고 없었다. 당장 고쳐야 했다. 아니면 정말 큰일이 났다.
진우는 아무한테도 말 안 했지만, 속으로 알았다. 다음 장에는 무조건 정비소에 가야 했다. 더는 미룰 수 없었다. 미루면, 다음엔 차가 안 서는 게 아니라 사람이 다칠 거였다.
진우는 다시 차를 몰았다. 아주 천천히. 남은 내리막을 기다시피 내려갔다. 마지막 집에 김치를 전했다. 외딴집 어르신이 고맙다고 했다. 진우는 그 집을 나와, 더 조심해서 마을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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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호가 마을로 돌아오자, 갈범이가 먼저 달려왔다.
평상 밑에서 쪼르르 나와, 희망호 쪽으로 왔다. 짐칸 냄새를 킁킁 맡았다. 김치 냄새가 밴 거였다. 하루 종일 김치 통을 싣고 다녀서. 갈범이가 꼬리를 흔들었다. 짐칸 주위를 빙빙 돌았다.
진우가 차에서 내려 그걸 보고 웃었다. 방금 산길에서 식은땀을 흘린 게 무색하게.
“너는 김치 안 먹잖아.”
갈범이는 들은 척도 안 하고 계속 꼬리를 흔들었다. 짐칸을 올려다보며. 김치 냄새가 좋은 건지, 그냥 진우가 돌아온 게 좋은 건지. 진우가 갈범이를 한 번 쓰다듬었다. 갈범이가 진우 다리에 몸을 비볐다.
진우는 잠깐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갈범이를 쓰다듬으며. 산길에서 놀란 마음이, 갈범이 덕에 조금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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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졌다.
연화마을 굴뚝마다 연기가 올랐다. 저녁 짓는 연기였다. 찬 공기 속으로 흰 연기가 곧게 솟았다. 집집마다 불이 켜졌다. 저녁 밥상이 차려졌다.
그 밥상마다, 오늘 받은 김치가 올랐다.
몸 불편한 노부부는 김치에 수육을 싸 먹었다. 어제 자식이 보내 준 고기가 있었다. 갓 받은 김치에 따뜻한 수육. 두 노인이 마주 앉아, 천천히 먹었다.
젊은 부부 집은 김치에 라면을 끓여 먹었다. 늦게 퇴근해서 간단히. 아이가 김치를 손으로 집어 먹다 맵다고 호호 불었다. 엄마가 웃으며 물을 떠다 줬다.
혼자 사는 이 할머니는 김치에 밥을 먹었다. 아침에도 김치, 저녁에도 김치. 그래도 좋았다. 혼자 먹는 밥상인데, 그 김치 덕에 혼자 같지 않았다.
골짜기 외딴집 어르신도, 평상의 정 영감도, 다들 그 김치를 먹었다. 같은 날 같이 담근, 같은 김치를. 누구는 수육과, 누구는 라면과, 누구는 혼자서.
진우도 집에서 김치를 먹었다. 어르신들이 한 통 남겨 준 거였다. 진우도 혼자 먹는 밥상이었다. 그런데 그 김치를 먹으니, 오늘 돌아본 집들이 떠올랐다. 노부부, 젊은 부부, 혼자 사는 할머니. 다들 지금 이 김치를 먹고 있을 거였다. 진우는 혼자 먹으면서도, 그 사람들과 같이 먹는 것 같았다.
같은 김치였다. 그런데 그 김치가 집집마다 다르게 가닿았다. 어떤 집엔 잔치였고, 어떤 집엔 위로였고, 어떤 집엔 혼자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김치는 하나인데, 받는 사람마다 다른 마음으로 받았다.
사람마다 다른 위로가 되어 찾아가고 있었다.
— 길 위의 만물상 제9회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