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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기록, 처음 판단이 틀렸다면 누가 다시 볼까?

이 콘텐츠는 제작 과정에서 AI의 도움을 받았으며, 운영자가 내용을 검토·수정하여 게시하였습니다.

범이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큰 사고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조사가 시작되자 범이가 기억하는 사고와 상대방이 말하는 사고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블랙박스가 없다는 이야기도 나왔고, 처음엔 별일 아닌 것 같던 상황이 나중엔 병원 치료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범이는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범이
“뭐, 나중에 기록 보고 다시 확인하면 되겠지.”

범이와 웅녀가 여러 기록을 돋보기로 살펴보는 모습

처음 판단이 틀렸다면,
누가 다시 봐줄까?

그런데 기록이 만들어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범이는 이상한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범이
“나는 사고 피해자인디, 조사받다 보니 내가 가해자 된 것 같고… 또 한 번 피해자가 되는 기분이 드는구먼.”

수사기관이 범이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다만 사고 피해자가 조사를 받으면서 자신의 이야기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고 느낄 때, 그 절차 자체가 또 하나의 힘든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범이의 이야기는 제가 교통사고 재판을 겪으며 느꼈던 의문을 조금 바꾸어 담은 이야기입니다.

저 역시 교통사고 피해자로 재판을 하면서 경찰 조사기록을 자세히 들여다볼 일이 있었습니다. 당사자들의 말이 서로 다르고, 제가 이해한 사고와 상대방의 주장이 달라지는 걸 보면서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 만들어진 기록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범이와 웅녀가 사고 관련 기록과 자료를 살펴보는 모습

처음 만들어진 기록이
다음 판단의 출발점이 된다면?

상대방이 거짓말을 했다거나 허위로 진료를 받았다고 단정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저 당사자들의 말이 서로 달랐고, 그 경험을 통해 ‘처음 판단’이라는 것의 정확성을 자꾸 생각하게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재판을 하면서 생긴 질문

이 생각은 조사를 받던 그 당시에 완성된 게 아니었습니다. 뚜렷해진 건 그 뒤로 재판을 오래 하면서였습니다.

재판을 하다 보니 사건이라는 게 처음부터 완벽하게 정리돼서 법원에 오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법정에서는 당사자 주장도 다시 듣고, 필요하면 감정을 받고, 사실조회도 하고, 전문성이 필요한 부분은 전문심리위원의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판사도 모든 분야를 다 알 수는 없으니, 자기 판단만 믿지 않고 전문가에게 묻는 겁니다.

범이와 웅녀가 재판 과정에서 다른 판단을 접하는 모습

재판에 와서야
다른 눈으로 다시 보게 되는 것들

범이가 이 얘기를 듣더니 물었습니다.

범이
“판사님도 모르는 건 전문가한테 묻는디, 수사할 때 모르는 건 누구한테 묻는 겨?”

교통사고와 의료 자료 등 전문적인 자료를 검토하는 모습

수사에도 전문지식이 필요한 사건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의료 사고, 교통공학이 얽힌 사고, 금융 범죄, IT 관련 사건, 과학수사가 필요한 사건, 대형 재난, 실종 사건 같은 것들 말입니다. 전문지식이 필요한 사건일수록 처음 본 사람의 판단이 얼마나 정확했는지, 나중에 확인할 방법이 중요해집니다.

처음 판단이 틀렸다면 누가 다시 볼까

그러던 중 최근 제주 실종사건 처리 논란을 보게 됐습니다. 범이의 질문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범이
“처음 본 사람이 잘못 봤다면, 다른 사람이 한 번 더 봤으면 어땠을까?”

이 이야기는 실종자나 가족을 두고 이러쿵저러쿵하려는 게 아닙니다.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을 다시 들추려는 것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봤다고 해서 반드시 결과가 달라졌을 거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이런 질문 정도는 남습니다. 결과가 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첫 판단의 오류를 더 일찍 발견할 기회는 생기지 않았을까요.

경찰이냐 검찰이냐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검찰의 권한이 너무 크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수사권을 조정하고,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자는 논의가 계속돼 왔습니다.

범이
“검찰이 너무 세서 문제라며?”

웅녀
“그래서 권한을 나누자는 얘기가 나온 거지.”

범이
“근디 한쪽에서 빼서 다른 한쪽에 다 주면, 그건 괜찮은 겨?”

중요한 건 경찰이 옳으냐 검찰이 옳으냐가 아니라, 한 기관에 권한이 집중되는 게 문제였다면 그 권한을 다른 한 기관에 넘기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하는 부분입니다.

범이는 또 물었습니다.

범이
“재판은 한 번 틀릴까 봐 다시 보는디, 수사는 처음 틀리면 누가 다시 보는 겨?”

여러 단계로 검토되는 재판과 첫 판단의 중요성을 표현한 모습

재판은 여러 눈으로 다시 보는데,
수사의 첫 판단은 누가 다시 볼까?

‘수사 1심’, ‘수사 2심’, ‘삼중수사’ 같은 말은 실제 법학에서 쓰는 제도명이 아닙니다. 문제를 쉽게 생각해보려고 떠올린 비유일 뿐입니다. 수사는 재판과 달리 증거를 빨리 찾고 보전해야 하는 절차이기도 해서 재판의 심급제를 그대로 가져올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수사도 무조건 세 번 하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진짜 질문은 “첫 판단의 오류를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입니다.

세 사람이 본 걸까, 첫 사람의 눈으로 본 걸까

옛날 이야기 가운데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있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지만, 여러 사람이 같은 말을 되풀이하면 결국 없는 호랑이도 있는 것처럼 믿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범이와 웅녀가 기록을 살펴보는 장면

세 사람이 각각 본 걸까,
첫 사람의 눈으로 세 사람이 본 걸까?

수사기록이 소문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 비유에서 말하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라 ‘처음 만들어진 생각의 힘’입니다.

한번 만들어진 판단이 다음 사람에게 그대로 전달되고, 또 다음 사람이 그걸 전제로 사건을 본다면 이런 질문은 해볼 수 있습니다.

“세 사람이 각각 본 걸까, 아니면 첫 사람의 눈으로 세 사람이 본 걸까?”

독일은 어떻게 나눠서 보고 있을까

그래서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독일을 찾아봤습니다. 독일이 정답이라서가 아닙니다. 경찰의 첫 판단과 검찰의 판단, 법원의 통제를 어떻게 나눠 놓았는지 참고삼아 본 것뿐입니다.

독일의 수사기관에서 기록을 검토하는 모습을 범이와 웅녀가 바라보는 장면

독일은 경찰의 수사 뒤
검찰이 다시 기록을 봅니다.

독일 법률상으로는 검찰이 수사를 책임지고, 최종적으로 기소할지 사건을 종결할지 판단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경찰이 사건을 최종적으로 종결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현장 수사의 상당 부분을 경찰이 담당하고, 일반적인 사건에서는 경찰이 수사를 상당 부분 진행한 뒤 검찰이 기록을 검토하는 구조가 되는 경우도 있다는 연구들이 있습니다.

범이
“검찰이 경찰 기록만 그대로 보고 판단하면, 그건 다른 눈이여 같은 안경이여?”

기관이 둘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두 개의 독립된 눈이 작동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범이
“그럼 독일엔 수사판사가 따로 있는 겨?”

웅녀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수사하는 판사는 아니야. 구속이나 압수, 수색, 감청처럼 기본권을 크게 건드리는 수사행위에 법관이 개입해서 통제하는 거지.”

법관이 수사 관련 서류를 검토하는 모습을 범이와 웅녀가 바라보는 장면

수사판사는 다시 수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강제수사를 통제하는 법관입니다.

‘판사가 있다’는 사실 하나보다 그 판사가 정확히 무엇을 보는지가 중요합니다.

피해자가 법원에 다시 물어볼 수 있다면

독일에는 검찰이 사건을 종결했을 때 일정한 요건을 갖춘 피해자가 그 판단에 불복할 수 있는 절차가 있습니다. 먼저 상급 검찰에 이의를 제기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고등법원에 판단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다만 피해자가 판사에게 “다시 수사해 달라”고 하면 판사가 직접 수사를 시작하는 제도는 아닙니다. 수사기관이 내린 종결 판단을 독립된 법원에 가져가 다시 심사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통로에 가깝습니다.

범이와 웅녀가 법원에서 사건에 대한 재검토를 요청하는 모습

수사기관의 종결 판단을
법원에 다시 물어볼 수 있다면?

범이
“그럼 우리나라는 법원에 아예 못 가는 겨?”

웅녀
“그건 아니야. 우리나라에도 재정신청이라는 제도가 있어. 일정한 요건 아래 검사의 불기소 처분에 대해 법원에 다시 판단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지.”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이 생깁니다.

재정신청은 분명 수사기관 밖의 법원이 불기소 판단을 심사할 수 있게 만든 중요한 통로입니다. 그렇다고 법원이 사건을 처음부터 새로 수사하는 절차는 아닙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재정신청의 실효성을 두고 비판도 나옵니다. 처음 수사에서 중요한 증거가 빠졌거나, 필요한 전문가 검토가 이뤄지지 않는 등 수사 자체가 충분하지 않았다면, 나중에 법원이 기존 기록을 중심으로 판단할 때 처음 수사의 빈틈을 얼마나 발견할 수 있느냐는 문제입니다.

범이
“처음 조사에서 빠뜨린 게 있는디, 그 조사기록 들고 법원 가면 판사님은 뭘 보고 찾는 겨?”

이 비판만으로 재정신청이 ‘있으나 마나한 제도’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법원이 공소제기 결정을 하는 사건도 있고, 수사기관의 불기소 판단을 외부에서 심사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다만 ‘법원에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과 ‘처음 수사가 충분했는지까지 실질적으로 다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같은 질문이 아닙니다.

범이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습니다.

범이
“근디 나는 기소할지만 묻는 게 아니라, 수사를 제대로 했는지도 물어볼 수 있으면 어떨까 싶은디.”

가칭 ‘수사 재심사’를 상상해본다면

여기서 하나 상상해봤습니다. 이름을 붙이자면 ‘수사 재심사’ 정도가 될까요.

“판사가 수사를 대신하는 게 아니라, ‘이 수사가 여기서 끝나도 되는가’를 판단하는 절차라면 어떨까.”

범이와 웅녀가 여러 사람이 사건을 다시 검토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장면

다시 수사하라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끝내도 되는지를 묻는다면?

이건 지금 있는 제도도 아니고, 학술적으로 정립된 이름도 아닙니다. 이런 방식도 한번 고민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피해자가 “중요한 객관적 증거가 조사되지 않았다”, “필요한 전문가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다”, “수사기록과 종결 이유 사이에 큰 모순이 있다” 같은 구체적인 이유를 제시했을 때만 심사가 가능하도록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법원이 보기에 이유가 있다면 추가수사가 필요한지, 다른 수사팀이 다시 볼 필요가 있는지, 전문가 검토가 필요한지 정도를 판단하는 방식입니다. 판사가 직접 범인을 잡거나 수사를 지휘하는 제도는 아닙니다.

웅녀
“근데 그렇게 쉽게 다시 수사하게 하면 사건이 안 끝날 수도 있어.”

수사 기간이 지나치게 길어질 수 있고, 피의자에게도 장기간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경찰·검찰·법원의 역할이 뒤섞일 위험, 법원의 업무 부담, 인력과 비용 문제도 있습니다. 피해자의 불만만으로 계속 재수사를 허용하는 것도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습니다.

범이
“그럼 모든 사건을 세 번 보자는 건 아니네.”

웅녀
“그렇지. 중요한 건 몇 번이 아니라, 어떤 사건을 누가 다시 보느냐겠지.”

사람만 바꾸면 정말 다른 눈이 될까

수사를 다루는 연구들을 찾아보다가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에 특정한 용의자나 가설을 세우면 이후 증거를 찾고 해석하는 방식 자체가 거기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를 확증편향 또는 터널비전이라고 부릅니다.

수사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다른 사람이 사건을 검토하더라도 기존 수사팀의 가설을 먼저 전달받으면 판단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범이
“아, 사람만 바꾼다고 다른 눈이 되는 건 아니구먼.”

진짜 다른 눈이 되려면 처음 판단한 사람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기존 결론에 너무 일찍 노출되지 않으며, 다른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류를 발견했을 때 실제로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권한도 필요합니다.

범이는 여전히 교통사고 조사를 받던 그때가 떠올랐습니다.

범이
“사고는 한 번 당했는디, 내 말을 설명하느라 또 한 번 지치는구먼.”

범이
“웅녀야, 그러면 경찰을 못 믿자는 얘기는 아닌 거지?”

웅녀
“그런 얘기가 아니야. 경찰도, 검사도, 판사도 사람이니까.”

범이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습니다.

범이
“사람이 틀릴 수 있으니까, 틀렸을 때 알아챌 길을 만들자는 거네.”

중요한 건 몇 번이 아니라, 누가 다시 보느냐

처음에는 재판이 3심이라면 수사도 여러 번 보면 되는 것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찾아볼수록 문제는 횟수가 아니었습니다. 처음 판단과 정말 다른 눈으로 다시 볼 수 있는가, 그게 핵심이었습니다.

해안가에서 범이가 기록과 두 개의 돋보기를 바라보는 장면

중요한 건 몇 번이 아니라,
정말 다른 눈이 다시 보는가입니다.

경찰에게 줄 것인가, 검찰에게 줄 것인가만큼이나 처음 판단이 틀렸을 때 누가 그것을 발견할 수 있게 할 것인지도 수사개혁에서 함께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일정한 경우 피해자가 “이 수사가 정말 여기서 끝나도 되는가”를 독립된 법원에 한번 물어볼 수 있는 길도 조금 더 고민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정답은 아닙니다. 그저 오래 남을 것 같은 질문 하나를 남겨둡니다.

※ 참고: 한국 재정신청 제도와 독일 제도에 관한 설명은 형사소송법 및 관련 조사자료를 바탕으로 일반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것입니다. ‘수사 재심사’는 현행 제도명이 아니라 글에서 제안하는 가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