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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마을 장날, 희망호가 오지 않은 날

이 콘텐츠는 제작 과정에서 AI의 도움을 받았으며, 운영자가 내용을 검토·수정하여 게시하였습니다.

《길 위의 만물상》 제17회

오지 않는 장날
연화마을 공터에서 주민들이 경운기 곁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조금 늦나 보지.”

박 할머니가 그렇게 말한 뒤에도 한참이 지났다.

희망호가 늘 서던 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정 영감은 평상에서 찻잔을 든 채 자꾸 길 쪽을 봤다. 최병수는 손목시계를 몇 번이나 확인했다. 이 할머니도 대문 밖에 나와 서 있었다.

멀리서 엔진 소리가 들리면 모두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우편 배달 차량이거나 낯선 승용차였다.

아무도 걱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희망호가 오지 않는 빈 산길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연화마을 사람들

· · ·

박 할머니가 빈 장바구니를 내려다봤다.

“두부도 떨어지고, 식용유도 바닥인디.”

정 영감이 찻잔을 기울였다. 바닥에 찻잎 몇 조각만 남아 있었다.

이 할머니는 주머니에서 반듯하게 접힌 빈 약봉지를 꺼냈다.

“나는 약국에 들러 달라고 하려 했지.”

누군가 말했다.

“두부야 하루쯤 없어도 사는디.”

이 할머니가 빈 약봉지를 다시 접으며 말했다.

“다 그런 건 아니지.”

· · ·

최병수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다린다고 물건이 걸어오나. 내가 갔다 오지.”

그는 창고 쪽으로 가서 낡은 경운기를 끌고 나왔다. 시동이 한 번에 걸리지 않았다. 두세 번 만에 검은 연기를 뿜으며 켜졌다.

누군가 물었다.

“그걸로 읍내까지 가게?”

최병수가 대답했다.

“차는 차여.”

그가 경운기를 두드리며 덧붙였다.

“오늘은 희망호 대신 병수호여.”

갈범이가 다가와 앞발로 연필 끝을 툭 건드리고는 다시 볕 드는 자리로 돌아갔다.

최병수가 낡은 경운기의 시동을 걸고 주민들이 뒤에서 준비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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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할머니가 종이와 연필을 가져왔다. 최병수가 받아 적기 시작했다.

“두부는 부드러운 거로 적어. 나는 딱딱한 건 싫어.”

정 영감이 말했다.

“내 차는 단 거 말고.”

이 할머니도 빈 약봉지를 내밀었다.

“나는 큰 통 말고 작은 거. 손목이 아파서.”

종이 한 장에 고칠 말이 자꾸 늘어났다. 최병수가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박 할머니가 중얼거렸다.

“강 양반은 이런 걸 안 물어도 알았는디.”

몸이 불편한 노부부의 혈압약 이야기가 뒤늦게 나왔다. 서윤이가 젊은 부부 집으로 뛰어가 기저귀 크기를 물어보고 왔다.

서윤이가 최병수의 글씨를 들여다보며 물었다.

“이건 두부예요, 두루마리예요?”

최병수가 헛기침을 하며 글씨를 고쳐 썼다.

평상에 둘러앉아 주문 종이를 확인하고 물건을 하나씩 말하는 마을 사람들

· · ·

정 영감이 종이를 위에서부터 다시 읽었다.

“두부 셋. 식용유 하나. 작은 약봉지 하나. 기저귀는 중형.”

박 할머니가 손가락으로 종이를 짚었다.

“노부부 약 빠졌잖여.”

최병수가 그 자리에 급히 몇 글자를 더 적었다. 종이 끝이 이미 여러 번 지우고 쓴 자국으로 지저분했다.

최병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강 양반은 이걸 매주 혼자 했단 말이지.”

아무도 그 말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 · ·

진우는 집에 있었다.

식탁 위에는 주문 수첩과 볼펜이 놓여 있었다. 평소라면 벌써 몇 장은 새 주문으로 채워졌을 시간이었다.

아침에 박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마당에 나가 있는 모양이었다. 잠시 뒤 다시 걸 생각으로 휴대전화를 내려놨다.

그러고는 시간이 흘렀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강 양반, 오늘 안 와?”

“차를 정비소에 맡겼어요.”

잠깐 침묵이 흘렀다.

“차는 많이 아프대?”

진우는 희망호 이야기를 하는데도 사람의 안부를 전하는 기분이 들었다.

“브레이크를 고쳐야 한대요. 며칠 걸릴 수도 있고요.”

“필요한 것 적어 두세요. 제가 다른 방법을 알아볼게요.”

“됐어. 차 고치는 동안은 우리가 해 볼게.”

전화를 끊은 뒤 진우는 주문 수첩을 오래 바라봤다.

· · ·

경운기 짐칸에 빈 상자와 주문표가 실렸다.

봉수 할아버지가 창고에서 밧줄을 가져왔다. 빈 상자들이 흔들리지 않게 짐칸에 묶었다. 한 번 당겨 보고, 매듭을 다시 조였다.

“내려가다가 풀리면 안 돼요.”

박 할머니가 보자기에 삶은 달걀과 주먹밥을 싸서 건넸다.

“갔다 오다 배고프면 먹어.”

최병수가 큰일을 맡은 사람처럼 그것을 주머니에 넣고 운전대를 잡았다.

· · ·

경운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짐칸의 빈 상자 하나가 굴러떨어졌다. 갈범이가 놀라 옆으로 달아났다. 서윤이가 상자를 주워 다시 올렸다. 봉수 할아버지가 밧줄을 다시 한번 단단히 묶었다.

최병수가 민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직 출발도 안 했는디.”

사람들이 잠깐 웃었다.

경운기가 다시 출발했다. 희망호보다 훨씬 느렸고, 엔진 소리도 거칠었다. 그래도 조금씩 산길을 내려갔다.

마을 사람들은 그 뒷모습을 오래 바라봤다.

최병수가 모는 경운기가 마을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산길을 내려가는 모습
희망호는 오지 않았지만,
길까지 멈춘 것은 아니었다.

《길 위의 만물상》 제17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