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이의 수다》
우리 집이 물류창고여?
범이가 설거지를 하다 말고 멈췄다.
방금 쓴 물티슈가 손에 들려 있었다. 아주 깨끗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바로 버리기에는 조금 아까웠다.
범이
“어차피 버릴 거, 프라이팬 기름기나 한 번 훔치고 버려야지.”
옆에 있던 웅녀가 범이를 쳐다봤다.
웅녀
“그것까지 아껴?”
범이는 대답 대신 웅녀 손을 봤다. 웅녀는 화장지를 세 장이나 한꺼번에 뽑아 들고 있었다.
범이
“아직 뭘 닦을지도 안 정했는디 세 장부터 뽑는 겨?”
웅녀는 잠깐 멈추더니 두 장을 슬쩍 내려놨다.
범이는 환경운동가가 아니다
범이가 물건을 아끼는 이유는 거창하지 않다.
자기 돈 주고 산 멀쩡한 물건을 굳이 빨리 버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배달음식을 주문할 때 집에 숟가락과 젓가락이 있으면 일회용 수저는 받지 않는다. 택배상자도 깨끗하면 접어두고 다시 쓴다. 에어캡이나 종이 완충재도 상태가 괜찮으면 한쪽에 모아둔다.
범이
“돈 주고 산 건디 쓸 수 있을 때까지 써야지. 멀쩡한디 왜 버려?”
웅녀
“그러다 우리 집이 창고 되겄어.”
그 말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었다.
현관 한쪽에는 접어놓은 택배상자가 있었고, 서랍에는 포장지와 완충재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택배가 왔다
어느 날 작은 물건 하나가 배송됐다.
범이는 현관에 놓인 상자를 한동안 쳐다봤다. 자신이 뭘 그렇게 큰 걸 주문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범이
“내가 냉장고를 샀나?”
웅녀
“열어봐.”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종이 완충재가 한가득 들어 있었다. 그걸 걷어내고 또 걷어내자 바닥에서 작은 물건 하나가 나왔다.
손톱깎이였다.
범이는 손톱깎이와 택배상자를 번갈아 봤다.
범이
“얘가 오는 데 이렇게 큰 집이 필요했던 겨?”
웅녀
“안 깨지게 보내려고 그랬겠지.”
범이
“안 깨지는 물건인디?”
범이는 상자를 접었다. 완충재도 다시 쓸 생각으로 따로 모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이상했다.
자기가 아껴서 물티슈 한 장을 더 쓰고, 일회용 수저 하나를 덜 받고, 택배상자를 한 번 더 사용하는 동안에도 집 밖에서는 훨씬 많은 포장이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
물건이 망가지지 않도록 포장하는 것은 필요하다. 배송 과정에서 충격을 막아야 하는 물건도 있다.
하지만 필요한 포장과 필요 이상으로 큰 상자와 많은 완충재를 사용하는 것은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범이가 아끼는 습관 덕분에 쓰레기가 조금 줄 수는 있다. 그렇다고 모든 책임을 소비자의 절약에만 맡길 수도 없다.
범이
“나는 버릴 것도 한 번 더 쓰고 있는디, 처음부터 이렇게 많이 들어오면 내가 언제 다 쓰는 겨?”
웅녀가 바닥에 쌓인 상자를 둘러봤다.
웅녀
“그래서 우리 집이 물류창고가 된 거 아니여?”
범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범이는 탁자 위에 놓인 플라스틱 용기 하나를 집어 들었다.
깨끗이 씻어서 분리배출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바닥에 찍힌 표시를 한참 들여다보던 범이의 표정이 다시 이상해졌다.
범이
“웅녀야. 우리가 분리해서 버리면 이거 진짜 다시 쓰는 겨?”
웅녀도 용기를 들여다봤다.
이번에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정말 재활용됐을까?
오늘의 한 줄
작은 물건 하나를 주문했는데 지나치게 큰 상자나 많은 포장재가 온 경험이 있다면 이야기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