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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노인의 닫힌 문, 누군가 한 번 두드려 주는 일

이 콘텐츠는 제작 과정에서 AI의 도움을 받았으며, 운영자가 내용을 검토·수정하여 게시하였습니다.
《길 위의 만물상》
제12회
문을 두드리는 일
닫힌 대문 앞에서 노크하려는 진우와 마을 사람들

새벽 네 시였다.

희망호가 안개 속을 올랐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안개에 부딪혀 몇 미터 앞에서 흩어졌다. 진우는 속도를 줄이고 핸들을 두 손으로 잡았다. 길이 보이는 만큼씩만 갔다. 서두르지 않았다. 이 길은 서두르면 안 됐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차 안은 조용했다. 라디오가 낮게 흘렀다.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삼십 퍼센트를 넘어선 가운데, 고독사 통계는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농촌 지역과 독거 어르신의 경우……”

진우는 라디오를 끄지 않았다. 그냥 뒀다. 뉴스 소리가 히터 바람 소리에 섞여 흘렀다. 고독사. 1인 가구. 돌봄. 요즘 그런 말이 자주 나왔다.

진우는 그 말들을 들으며 안개 낀 산을 올랐다.

오르막 중간에서 엔진이 한 번 거칠게 떨렸다. 드르륵. 진우가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줬다. 떨림이 길게 이어지다가 잦아들었다.

진우는 숨을 한 번 내쉬고 다시 앞을 봤다. 안개가 빽빽했다.

새벽 안개 속 산길을 오르는 희망호
· · ·

연화마을에 도착했을 때, 박 할머니가 마당에 나와 있었다.

이른 시간이었다. 박 할머니가 마당에서 기다리는 건 평소와 달랐다. 진우가 차에서 내리는데, 박 할머니가 곧장 다가왔다.

“강 양반, 잠깐 봐야 할 것 같여.”

박 할머니가 골목 쪽을 가리켰다. 이 할머니 집 방향이었다.

“요 며칠 안 보여. 나도 어제오늘 지나치다 봤는데, 문이 닫혀 있어. 이 할머니는 아침이면 꼭 문을 열어 뒀거든. 공기 들어오게.”

진우가 그쪽으로 걸었다.

이 할머니 집 대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빗장이 걸려 있었다. 진우가 잠깐 대문 앞에 섰다. 귀를 기울였다.

안에서 소리가 났다. 작은 소리였다. 뭔가 움직이는 소리.

진우는 그제야 어깨에서 힘을 뺐다. 아주 큰일은 아닌 것 같았다.

겨울 골목의 굳게 닫힌 대문
· · ·

평상에 정 영감이 앉아 있었다. 모과차를 마시고 있었다. 박 할머니가 모과를 달여 뒀던 거였다.

노란 차에서 향긋하고 새콤한 냄새가 났다. 겨울 아침에 잘 맞는 냄새였다.

정 영감이 그 차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이 할머니 집 쪽을 바라봤다.

박 할머니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며칠째 안 보이니까 마음이 안 놓여.”

최병수가 팔짱을 끼고 말했다.

“전화해 보면 되잖아요.”

“전화를 해도 안 받는 거여.”

최병수가 입을 다물었다. 정 영감이 모과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나이 들면 아픈 것보다 안 찾아오는 게 더 무섭지.”

아무도 그 말을 받지 않았다. 다들 들었다. 그냥 들었다.

진우도 물건을 꺼내다 손을 멈추고 그 말을 들었다.

정 영감이 찻잔을 내려놨다.

“아파서 누워 있는 건 어쩔 수 없어. 근디 아프면서 사흘이고 나흘이고 아무도 안 온다는 게 더 무서운 거여. 그게 진짜 아픈 거지.”

· · ·

진우가 이 할머니 집 대문을 두드렸다.

“할머니, 계세요? 저 진우예요.”

아무 소리도 없었다. 진우가 다시 두드렸다. 조금 더 크게.

“강 양반이에요. 문 좀 열어 주실 수 있어요?”

잠깐 기다렸다. 안에서 발소리가 났다. 느린 발소리였다. 바닥을 질질 끄는 것 같았다.

대문이 삐걱하고 열렸다.

이 할머니가 서 있었다. 얼굴이 창백했다. 입술이 말라 있었다.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다.

평소 단정한 이 할머니와 달랐다. 그 모습을 보고 진우가 뭔가 말하려는데, 이 할머니가 먼저 손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눌렀다.

“……아이고. 이 꼴로 보이네.”

대문 뒤로 몸을 반쯤 숨겼다.

문틈에 선 이 할머니와 진우

“많이 편찮으세요?”

“몸살이여. 며칠째. 별거 아니야.”

“며칠이나 됐어요?”

“사흘? 나흘? 날이 헷갈렸어. 그냥 누워 있었어.”

진우가 마당 안을 봤다. 부엌에 불이 꺼져 있었다. 며칠째 밥을 안 한 거였다.

싱크대에는 물컵 하나가 놓여 있었다. 마루에는 담요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마당이 조용했다.

“밥은 드셨어요?”

이 할머니가 잠깐 말이 없었다.

“……뭐 조금.”

진우는 더 묻지 않았다.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나흘째 혼자 누워 있던 사람의 얼굴이었다.

진우가 돌아서서 박 할머니한테 걸어갔다.

· · ·

마을이 움직였다.

박 할머니가 부엌으로 들어갔다. 죽을 끓이겠다고 했다. 쌀 씻는 소리가 났다.

정 영감은 집에 들어가더니 귤 한 봉지를 들고 나왔다. 아무 말 없이 이 할머니 집 쪽으로 걸어갔다.

최병수는 두부를 들고 나타났다.

“이 할머니 편찮다며. 이거라도 갖다 드려야지.”

진우는 희망호 짐칸에서 반찬을 꺼냈다. 김치, 멸치볶음, 콩조림. 팔려고 가져온 것들이었다. 그게 달리 쓰였다.

서윤이도 왔다. 귤 두 개를 손에 쥐고 달려왔다.

“이 할머니 드리려고요.”

작은 손에 귤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죽과 반찬과 귤을 들고 이 할머니 집을 찾은 이웃들

다들 이 할머니 집으로 향했다. 죽, 반찬, 귤, 두부. 서윤이 손의 귤 두 개.

거창한 게 아니었다. 그냥 있는 거 조금씩 가져온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 할머니 마당에 그게 다 모이니까 꽤 됐다.

이 할머니가 마루에 앉아 그걸 봤다.

“아이고,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박 할머니가 죽 냄비를 들고 오며 말했다.

“됐어. 그냥 앉아 있어.”

· · ·

죽을 떠놓고 다들 마루에 걸터앉았다.

이 할머니가 숟가락을 들었다. 한 술 먹었다. 또 한 술. 천천히.

박 할머니가 그걸 봤다. 아무 말 안 했다. 그냥 봤다.

서윤이가 귤을 까서 이 할머니한테 건넸다.

“이거 드세요.”

이 할머니가 귤 한 쪽을 받아 먹었다. 그러더니 서윤이를 봤다.

“너는 어디서 왔냐.”

“저 저기 살아요. 박 할머니 옆집이요.”

“이름이 뭐고.”

“서윤이요.”

이 할머니가 귤을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윤이. 착하네.”

이 할머니가 귤 한 쪽을 다시 서윤이한테 건넸다. 줬다 받았다 하는 모양에 다들 웃음이 나왔다.

이 할머니와 서윤이가 귤 한 조각을 주고받는 모습

최병수가 부엌 쪽을 기웃거리더니 아궁이로 갔다.

“연탄은요? 연탄은 있어요?”

“있어. 있어.”

“불이 꺼져 있잖아요.”

“됐어. 내가 해.”

“못 일어나시잖아요.”

이 할머니가 입을 다물었다. 최병수가 아궁이에 불을 피웠다.

잠시 후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갔다. 오랜만에 오르는 연기였다.

정 영감이 그 연기를 보며 말했다.

“이래야지.”

아궁이에 다시 불이 붙고 굴뚝에서 연기가 오르는 겨울 마당
· · ·

정 영감이 마루 끝에 걸터앉았다. 이 할머니가 죽 그릇을 비웠다.

“며칠이나 혼자 있었어요?”

이 할머니가 생각했다.

“사흘. 아니 나흘인가. 날이 헷갈렸어.”

“왜 말을 안 했어요. 전화라도 하지.”

이 할머니가 창밖을 봤다. 한참 밖을 보다가 말했다.

“……전화하기가 뭐해서.”

그 말이 마당에 잠깐 걸렸다. 아프다고 전화하기가 뭐하다는 거였다. 귀찮게 하는 것 같아서. 폐가 될 것 같아서.

박 할머니가 이 할머니를 봤다. 뭔가 말하려다 하지 않았다. 진우도 말이 없었다. 그냥 있었다.

갈범이가 마당으로 들어왔다. 마루 밑을 킁킁거리더니 마루 위로 올라왔다. 이 할머니 무릎 옆에 앉았다.

이 할머니가 손을 내밀었다. 갈범이가 그 손에 머리를 비볐다.

“이놈은 어디서 왔어.”

“마을 고양이예요.”

“마을 고양이가 이렇게 살쪄?”

다들 웃었다.

정 영감이 모과차 잔을 이 할머니한테 내밀었다. 식었지만.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게 아니여.
누가 문 한번 두드려 주는 걸로도 산다.”

이 할머니와 갈범이, 모과차를 건네는 정 영감

이 할머니가 정 영감을 봤다.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냥 봤다.

“다음엔 전화해요. 뭐해서가 아니여.”

이 할머니가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 · ·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다들 돌아갈 채비를 했다.

부엌엔 죽이 조금 남아 있었다. 반찬도. 귤도. 연탄도 최병수가 다시 살려 놔서 집이 따뜻했다.

진우가 마지막으로 나서는데, 이 할머니가 마루에서 말했다.

“강 양반.”

진우가 돌아봤다.

“고마워.”

“별거 아니에요.”

“별거여.”

진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대문을 나왔다.

뒤에서 대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그런데 이번엔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 조금 열려 있었다.

진우는 그걸 알아챘다. 돌아보지 않았다. 그냥 걸어왔다.

조금 열린 오래된 대문과 작은 발자국
· · ·

희망호가 마을을 벗어났다. 산길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내리막에서 브레이크를 밟았다. 페달이 깊이 들어갔다. 차가 한 박자 늦게 섰다.

진우는 두 번 나눠 밟고 핸들을 꽉 쥐었다.

천천히 내려가면서 오늘 하루를 생각했다.

사흘, 나흘. 이 할머니가 누워 있던 시간이었다.

몸살이었다. 별게 아니었다. 그런데 그 사흘 동안 아무도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아프면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데. 그 긴 시간을 혼자 보낸 거였다. 뭐가 먹고 싶다고 말할 사람도 없이.

사람은 혼자 살 수는 있어도, 혼자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인지도 몰랐다.

진우는 그 생각을 속으로만 했다. 핸들을 잡고 산을 내려갔다. 안개가 아직 산허리에 걸려 있었다.

· · ·

마을 어귀, 내리막이 시작되기 전에 빈집이 하나 있었다.

오래된 집이었다. 대문이 낡아 있고, 마당에 잡초가 올라와 있었다.

마당 한가운데 감나무가 서 있었다. 겨울이라 잎은 다 졌는데, 끝까지 안 떨어진 감이 두어 개 달려 있었다.

그 감이 어둠 속에서 주황빛으로 희미하게 빛났다.

최병수가 그 집 앞을 지나다 말했다.

“저 집 팔린다더라.”

진우가 그 집을 봤다. 낡은 대문. 잡초 난 마당. 겨울 감나무.

누가 살다 간 집이었다. 이제 누가 들어올 집이거나, 아니면 그냥 빈 채로 남을 집이었다.

희망호가 그 집 앞을 지나쳤다. 사이드미러 속에서 감나무가 멀어졌다.

사람은 혼자 살 수는 있어도,
혼자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인지도 몰랐다.

《길 위의 만물상》 제12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