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네 시였다.
희망호가 산길을 올랐다. 오늘은 안개가 옅었다. 겨울 끝자락이라 공기가 조금 풀려 있었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평소보다 멀리까지 뻗었다. 길 옆 나무들 끝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밤새 얼었다가 녹는 소리였다.
어디선가 산새 소리가 들렸다. 작고 가느다란 소리였다. 겨울 내내 조용하던 새들이 조금씩 목을 트는 거였다.
봄이 아직 오지 않았는데, 봄 냄새가 먼저 왔다.
진우는 창문을 조금 열었다. 찬 공기가 들어왔지만 전처럼 칼같지 않았다. 라디오가 흘렀다.
“전국 빈집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농촌 지역은 빈집 비율이 크게 늘고 있으며, 지방 소멸 위기 지역으로 지정된 시군구는……”
진우는 라디오를 껐다. 더 듣지 않았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새벽 공기 소리를 들었다. 나무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 산새 소리. 그게 더 나은 것 같았다.
배달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마을 입구 쪽에 사람이 서 있었다. 정 영감이었다. 박 할머니도 있었다.
둘이 빈집 앞에 서서 대문을 보고 있었다. 진우가 차를 세웠다.
대문에 종이가 붙어 있었다.
매매.
흰 종이에 손으로 쓴 글씨였다. 테이프로 대문 한쪽에 붙여 놨는데, 바람에 한쪽이 조금 접혀 있었다.
진우가 가까이 가서 봤다.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아들 번호인지, 딸 번호인지 몰랐다.
박 할머니가 그 종이를 보며 말했다.
“여기도 결국 팔리는구먼.”
정 영감이 마당 쪽을 봤다.
“사람이 없으니 집도 늙는 겨.”
진우가 차에서 내려 대문 앞에 섰다. 대문이 잠겨 있지 않았다. 안이 보였다.
감나무가 있었다. 겨울이라 잎은 없었는데, 가지 끝이 조금 붉어 있었다. 봄이 오면 피어날 준비를 하는 거였다.
낡은 평상이 마당 한쪽에 있었다. 다리 하나가 삐뚤어진 채로 서 있었다. 누가 고쳐 주지 않아서 그냥 몇 해를 기울어진 채였다.
빨랫줄도 그대로였다. 녹슨 고리에 줄이 달려 있었다. 아무것도 안 걸린 빨랫줄이었다.
부엌 창문 유리에 금이 하나 가 있었다. 언제 생긴 건지 몰랐다.
사람만 없었다.
박 할머니가 대문 앞에 잠깐 서 있었다.
그러더니 말을 시작했다. 딱히 누구한테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냥 기억이 나서 하는 말이었다.
“여기서 애들이 셋이었어. 큰애는 딸이고, 아들 둘. 여름이면 저 감나무에 매달렸지. 꼭대기까지 올라가려고 기를 쓰는 거여. 어미가 얼마나 마음을 졸였겠어. 내려와라 소리를 하루에도 몇 번을 질렀는지.”
박 할머니가 평상을 봤다.
“저 평상에서 할아버지가 늘 낮잠을 잤어. 부채 들고 드러누워서. 다리가 삐뚤어진 게 그때부터였어. 할아버지가 무거우니까. 그래도 고칠 생각을 안 했어. 그게 맞는 자리라고.”
박 할머니가 잠깐 말을 멈췄다.
“명절이면 온 집안이 다 모였어. 큰집이 여기였거든. 마당에서 고기를 구웠어. 연기가 얼마나 났는지. 동네에서 냄새 맡으면 저 집 명절이구나 했다고.”
박 할머니가 빨랫줄을 봤다.
“그 집 할머니가 빨래를 많이 했어. 아침마다 저기에 가득 널었지. 겨울에도 그랬어. 얼었다가 녹으면서 마른다고.”
“빨래가 얼면 딱딱해지잖여. 그걸 뚝뚝 꺾으면서 걷어들이는 거여. 그 소리가 겨울 아침마다 났어.”
박 할머니가 부엌 창문 쪽을 봤다.
“김장도 여기서 같이 했어. 마당 가득 배추를 쌓아 놓고. 동네 사람이 다 모였지. 이 집 할머니 손맛이 좋았거든. 젓갈을 잘 썼어.”
그냥 흘렀다. 억지로 끌어올리는 감정이 아니었다. 오래된 기억이 그냥 말이 되어 나오는 거였다.
말하면서 박 할머니도 그 기억 속으로 조금 들어가는 것 같았다. 정 영감이 들었다. 진우도 들었다.
“지금은 애들도 다 서울 가고. 할아버지는 오래전에 돌아가시고. 할머니 혼자 살다가 작년에 요양원으로 갔어. 혼자서는 더 이상 힘들다고.”
정 영감이 말했다.
“집은 그대로인데.”
“그렇지. 집은 그대로인데.”
마당이 조용했다. 감나무 가지가 바람에 조금 흔들렸다. 빨랫줄도 흔들렸다.
비어 있는데 바람은 왔다.
차 소리가 났다.
마을 입구에서 작은 승용차가 들어왔다. 서울 번호판이었다.
빈집 앞에 멈추더니 젊은 부부가 내렸다. 남자가 먼저 내리고, 여자가 아이를 안고 내렸다.
돌이 조금 넘은 아이였다. 남자가 고개를 꾸벅했다.
“안녕하세요. 이 집 매물 보러 왔는데요.”
박 할머니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정 영감도 괜히 자세를 고쳐 앉았다. 진우도 뭔가 기대가 됐다.
여기 누가 이사 오면 마을이 조금 살아날 것 같았다.
부부가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갔다.
남자가 꼼꼼하게 봤다. 부엌 문을 열고, 방을 들여다보고, 창문 상태를 확인하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메모도 했다.
준비를 해 온 사람처럼 체크리스트가 있는 것 같았다.
여자는 아이를 안은 채 마당을 천천히 걸었다. 감나무 아래에 섰다.
고개를 들어 가지를 봤다. 아이도 그 방향을 봤다.
아이가 손을 뻗었다. 가지를 잡으려는 거였다. 닿지 않았다.
아이가 그래도 계속 손을 뻗었다. 여자가 그걸 보며 웃었다. 잠깐이었다.
그러다 부엌을 들여다봤다. 한참 들여다봤다. 뭔가를 상상하는 것 같았다.
아침에 밥을 짓는 걸 상상하는 건지, 이 작은 부엌에서 어떻게 살림을 할지 생각하는 건지.
아이가 평상으로 기어가려 했다. 여자가 아이를 붙잡았다. 그래도 아이는 평상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삐뚤어진 평상이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빈집 밖에서 기다렸다. 아무도 서두르지 않았다. 그냥 기다렸다.
부부가 나왔다. 남자가 먼저 말했다.
“마당도 넓고 집도 생각보다 괜찮은데요.”
“……그런데.”
여자가 아이를 다독이며 말했다.
“병원이 너무 멀어요. 아이가 아프면 바로 가야 하는데. 읍내까지 얼마나 걸려요?”
“삼십 분은 걸려요.”
최병수가 솔직하게 말했다. 틀린 말하면 안 됐다.
“학교도 없고요. 아이 크면 통학을 어떻게 해야 할지.”
“좀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남자가 차 문을 열다가 마당을 한 번 더 봤다. 감나무가 보이는 각도였다.
남자가 말했다.
“좋은 집인데. 현실이 안 되네요.”
그게 다였다.
부부가 차에 탔다. 아이가 차 창문으로 마당을 봤다. 감나무를 보는 것 같았다.
손을 한 번 흔들었다. 아무한테나 흔드는 것 같은 손이었다.
차가 마을을 빠져나갔다. 마을 사람들이 그걸 봤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병원이 멀고 학교가 없는 건 사실이었다. 그 사람들이 나쁜 게 아니었다.
다 이해됐다. 이해되니까 뭐라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더 씁쓸했다.
정 영감이 대문을 천천히 닫았다. 삐걱하고 닫히는 소리가 났다.
잠깐 아무도 말이 없었다.
최병수가 발로 땅을 한 번 툭 찼다.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발로 툭 찼다. 그게 다였다.
정 영감이 마당으로 들어갔다. 잠겨 있지 않으니 그냥 들어갔다.
평상 위에 겨울 내내 쌓인 낙엽이 있었다. 정 영감이 그걸 손으로 쓸었다. 빗자루도 없이 그냥 손으로.
낙엽을 한쪽으로 모았다. 손이 차가웠다. 그래도 했다.
박 할머니도 들어왔다. 빨랫줄 고리가 녹이 슬어 있었다.
박 할머니가 손으로 닦았다. 뭐가 되는 건 아니었다. 그냥 닦았다.
닦다가 고리를 한번 당겨봤다. 줄이 팽팽했다. 아직 멀쩡했다.
진우도 들어왔다. 감나무 아래 마른 가지들이 떨어져 있었다. 진우가 그걸 한쪽으로 모았다.
손을 모으다가 가지 끝이 붉은 걸 봤다. 조금 더 자세히 봤다.
새눈이었다.
봄이 오면 저기서 잎이 나올 거였다.
셋이 아무 말 없이 그렇게 했다. 빈집 마당을 쓸고, 닦고, 모으고.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그래야 할 것 같아서 했다.
최병수가 마당으로 들어왔다. 부엌 창문 금 간 걸 보더니 혀를 찼다.
“이거 그냥 두면 더 간다.”
최병수가 짐칸에서 테이프를 꺼왔다. 희망호에 늘 있는 테이프였다.
금 간 자리에 테이프를 붙였다. 임시였다. 그래도 붙였다.
정 영감이 평상에 앉았다. 박 할머니가 오늘 대추차를 챙겨 줬다.
차 빛이 붉었다. 정 영감이 그걸 두 손으로 감싸 쥐고 한 모금 마셨다. 감나무를 봤다.
새눈이 돋아나는 가지 끝을.
“집도 사람이 살아야 집이지.”
낙엽 쓸어 모은 걸 한 번 보고.
“문만 있다고 집은 아니여.”
박 할머니가 빨랫줄 옆에 서서 말했다.
“사람도 그렇지. 찾아오는 사람이 있어야 사람 사는 거여.”
마당이 잠깐 조용했다.
감나무 가지가 흔들렸다. 봄바람이었다. 아직 차지만 겨울 바람과는 달랐다.
갈범이가 어디선가 들어왔다. 마당 구석을 킁킁거리더니, 정 영감 발치에 와서 앉았다.
정 영감이 내려다봤다. 갈범이가 올려다봤다.
“너는 빈집 냄새 맡으러 왔냐.”
갈범이가 대답 없이 마당을 한 번 둘러봤다. 그러더니 감나무 쪽으로 걸어갔다.
가지 끝을 올려다봤다. 새눈이 있는 자리였다.
“이놈도 알아.”
정 영감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해가 기울기 시작할 무렵, 진우가 희망호에 올랐다.
내리막에서 브레이크를 밟았다. 페달이 깊이 들어갔다. 차가 한 박자 늦게 섰다.
진우는 두 번 나눠 밟았다.
읍내 어귀를 지나쳤다. 정비소 간판이 보였다. 오늘은 불이 켜져 있었다.
진우가 속도를 조금 줄였다. 멈추려는 것 같았다.
그냥 지나쳤다.
산을 내려가면서 백미러를 봤다. 마을이 멀어지고 있었다.
그 끝에 빈집 감나무가 작게 보였다.
봄이 오면 그 나무에 잎이 나고, 여름이면 감이 달릴 거였다.
그 감을 딸 사람이 있어야 했다.
진우는 백미러로 빈집을 오래 바라봤다.
집도 사람처럼, 기다리는 법을 배우는 것 같았다.
며칠 뒤였다.
진우가 마을로 올라오는데, 빈집 앞에 낯선 트럭이 서 있었다.
짐을 내리고 있었다. 박스들이 마당에 쌓이고 있었다.
진우가 차를 세우고 내렸다.
짐을 나르는 사람들이 보였다. 젊은 사람이 아니었다.
백발의 노부부였다.
할아버지가 박스를 들고, 할머니가 그 옆에서 거들었다.
서두르지 않았다. 천천히 하나씩 날랐다.
박 할머니가 언제 나왔는지 옆에 서 있었다. 정 영감도 왔다. 최병수도 어디서 들었는지 나왔다.
박 할머니가 노부부한테 물었다.
“어디서 오셨어요?”
할머니가 박스를 내려놓으며 올려다봤다. 웃는 얼굴이었다.
“서울에서 내려왔습니다.”
그 말을 하고, 할아버지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감나무 앞에 멈췄다. 가지 끝을 봤다.
봄이 오면 피어날 새눈이 있는 자리였다.
할아버지가 한참 그 나무를 봤다.
박 할머니가 물었다.
“혹시 이 집을 아세요?”
할아버지가 감나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여기가 제 고향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봤다. 할아버지는 감나무만 봤다.
“오십 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저녁 햇살이 감나무 아래로 비쳤다. 가지 끝이 붉었다. 할아버지의 백발도 그 빛에 물들었다.
그때 할머니가 창고 문을 열었다.
삐걱하고 오래된 소리가 났다. 먼지가 흩날렸다.
구석에 낡은 나무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할아버지가 그쪽으로 걸어갔다. 상자 앞에 쪼그려 앉았다.
손으로 먼지를 쓸었다. 한참 그 상자를 바라봤다.
“아직 그대로 있었구나.”
아무도 그 말을 묻지 않았다.
봄이 오고 있었다.
《길 위의 만물상》 제13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