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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야 다시 갈 수 있다, 희망호가 정비소에 들어간 날

이 콘텐츠는 제작 과정에서 AI의 도움을 받았으며, 운영자가 내용을 검토·수정하여 게시하였습니다.
《길 위의 만물상》
제16회
멈춰야 다시 갈 수 있다
리프트 위에 올라간 희망호와 이를 바라보는 진우

정비사가 희망호를 몰고 정비소 안으로 들어갔다. 진우는 밖에 서서 차가 리프트 위로 천천히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차가 올라가자,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밑바닥이 드러났다. 녹슨 부품과 낡은 바퀴, 오래 묵은 흙먼지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 · ·

정비사가 손전등을 들고 차 밑으로 들어갔다가 한참 만에 나왔다. 기름 묻은 손을 헝겊에 닦으며 말했다.

희망호 밑을 손전등으로 살피는 정비사와 지켜보는 진우

“패드가 거의 다 닳았고, 호스도 오래됐어요. 브레이크액도 갈아야 하고요. 엔진 떨림도 그냥 넘길 상태는 아닙니다.”

진우가 물었다.

“많이 안 좋아요?”

정비사는 바로 겁을 주지 않았다.

“오래 버텼네요. 이 정도면 차가 진우 씨 사정을 봐준 겁니다.”

진우는 그 말에 웃지 못했다.

· · ·

정비사가 종이에 항목을 적어 내려갔다. 반드시 지금 해야 할 것과 조금 미뤄도 되는 것을 나눠 짚어 주었다.

진우는 견적서를 받아 들고 숫자를 봤다. 생각보다 컸다.

정비소에서 견적서를 받아 든 진우

정비소 안에서는 어디선가 공구 부딪는 소리만 들렸다.

차를 맡기면 며칠은 장사를 못 한다. 연화마을 어르신들 배달도 끊긴다.

그렇다고 지금 돈을 쓰면 당장 생활비가 빠듯해진다.

하지만 고치지 않고 계속 몰면, 언젠가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다칠 수 있었다.

진우가 조심스레 물었다.

“브레이크만 우선 고치면 안 될까요?”

정비사가 고개를 저었다.

“브레이크는 우선이 아니라 기본이에요.”

정비사는 잠시 뒤 덧붙였다.

“며칠만 세워 둡시다. 그래야 오래 타죠.”

· · ·

진우는 리프트 위에 걸린 희망호를 한참 올려다봤다.

운전석에는 늘 끼던 목장갑이 놓여 있었다. 대시보드 틈에는 구겨진 영수증과 마을 사람들의 주문 메모가 끼어 있었다.

희망호의 빈 운전석과 목장갑, 영수증, 주문 메모

김치통도, 두부 상자도, 약봉지도 저 차를 타고 산을 넘었다.

진우는 한동안 운전석만 바라봤다.

희망호를 멈추면,
진우의 하루도 함께 멈췄다.

· · ·

한참을 서 있던 진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맡길게요.”

정비사가 며칠 걸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려다 멈췄다. 며칠 걸릴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확실해지면 그때 말하기로 했다.

정비사가 차 키를 받아 들었다.

희망호 차 키를 정비사에게 맡기고 돌아서는 진우

진우는 습관처럼 운전석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서다가 멈춰 섰다.

오늘은 자신이 몰고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그제야 실감이 났다.

“수리 끝나면 연락드릴게요.”

“잘 부탁합니다.”

진우의 그 말은, 정비사에게라기보다 차에게 건네는 인사처럼 들렸다.

· · ·

읍내 버스정류장에서 진우는 한참을 기다렸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치던 자리였다.

버스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마침내 버스에 올라 창가에 앉았다.

매일 자신이 운전하던 산길이 승객 자리에서는 낯설게 보였다.

버스 창가에 앉아 익숙한 산길을 바라보는 진우

핸들을 잡지 않은 손이 이상하게 가벼웠다.

내리막이 나올 때마다 오른발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그러나 브레이크를 밟을 필요는 없었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길은 앞으로 흘러갔다.

· · ·

창밖을 보며 진우는 전날 정 영감이 봉수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늦은 거 아니여.”

버스가 굽은 길을 돌아 내려갔다.

진우는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핸들을 잡지 않은 손은 여전히 어색했다.

멈췄다고 끝난 건 아니었다.

· · ·

다음 날 아침, 연화마을 사람들은 평소 희망호가 오는 시간에 맞춰 공터와 평상으로 모였다.

평소 희망호가 오던 길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연화마을 사람들

박 할머니는 빈 장바구니를 들고 서 있었다.

정 영감은 차를 마시며 길 쪽을 바라봤다.

최병수는 손목시계를 몇 번이고 들여다봤다.

이 할머니도 대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갈범이는 희망호가 서던 빈자리를 몇 바퀴 맴돌았다.

멀리서 차 소리가 들릴 때마다 모두 고개를 들었지만, 지나가는 건 다른 차였다.

아무도 크게 불평하지 않았다.

다만 늘 있던 것이 오지 않으니, 마을이 어쩐지 조금 비어 보였다.

최병수가 물었다.

“오늘 강 양반 안 오는 날이었나?”

박 할머니가 대답했다.

“아닌데.”

정 영감은 대답 없이 길 쪽만 바라봤다.

· · ·
희망호가 서던 빈 공터를 맴도는 갈범이

희망호가 늘 서던 자리가 비어 있었다.

바람만 지나갔다.

멈춘 것은 희망호 한 대였는데,
마을의 하루도 조금 늦게 시작되고 있었다.

《길 위의 만물상》 제16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