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 같이 읽기 · 포스코 불법파견 판결 2회
“우리 회사가 만든 작업표준서입니다”
표지는 다르고 내용은 같다면, 그 문서는 누구의 것일까?
책상 위에 작업표준서 두 권이 놓여 있습니다.
표지에는 서로 다른 회사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첫 장을 넘기자 문장의 순서도, 작업방법도 거의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서는 정말 서로 다른 회사가 따로 만든 것일까요? 지난 회에서 MES라는 화면을 살펴봤다면, 이번에는 협력업체 이름이 적힌 작업표준서를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표지만 바꾼 책이라면, 누구의 작품일까?
유명 작가가 소설의 줄거리와 문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썼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출판할 때 표지만 바꾸고 다른 작가의 이름을 적었습니다.
이 책이 누구의 작품인지 알려면 표지의 이름만 봐서는 부족합니다.
누가 내용을 처음 설계했는지, 누가 문장을 썼는지, 누가 고칠 권한을 가졌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작업표준서도 비슷합니다. 협력업체 이름이 표지에 적혀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업체가 내용을 독립적으로 만들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판결문 원문 읽기 — 누가 먼저 이 문서를 썼는가?
서울고등법원 2024나2011540 판결문입니다.
쉽게 풀면
법원은 시간 순서를 먼저 봤습니다.
2001년 이전에는 포스코가 작업표준서를 작성해 제공했습니다. 협력업체가 자체적으로 작성했다는 표준서는 그 뒤에 등장했습니다.
표지의 회사 이름이 바뀌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실제 내용이 얼마나 닮았는지, 누가 수정 여부를 결정할 수 있었는지가 중요했습니다.
다만 두 문서가 비슷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결론이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법원은 MES, 현장 지시, 협력업체의 인사·설비 독립성 등 다른 사정과 함께 살폈습니다.
범이
표지에 협력업체 이름이 있으면 그 회사 문서 아닌가?
웅녀
법원은 표지보다 누가 내용을 만들고 바꿀 수 있었는지를 봤어.
범이
이름보다 문서가 만들어진 과정이 중요하다는 거네.
품질 기준이었을까, 작업방법 지시였을까?
같은 판결문의 다른 대목입니다.
정답과 풀이 과정으로 나눠보면
품질 기준은 “완성품이 어느 수준이어야 한다”는 정답을 정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작업방법 지시는 “언제, 어디서, 어떤 순서와 방법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풀이 과정을 정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작업표준서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도급에서도 완성품의 크기·강도·오차 범위처럼 결과의 품질을 정할 수 있습니다.
다만 작업자가 어떤 순서로 어떤 동작을 해야 하는지까지 세세하게 정했다면, 단순한 결과 기준을 넘어 작업방법에 대한 지시로 기능했는지가 쟁점이 됩니다.
범이
공장에는 원래 작업표준서가 다 있지 않아?
웅녀
있지. 표준서 자체가 문제는 아니야. 완성품 기준만 정했는지, 일하는 순서와 방법까지 정했는지가 중요해.
‘위장도급’ 내부 문건은 무엇을 보여줬을까?
포스코 내부 문건에는 포스코 표준을 그대로 단독 비치하면 ‘위장도급의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으므로 계약서류와 함께 비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취지의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 문건만으로 포스코가 불법파견을 인정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법원은 포스코 내부에서도 작업표준서의 형식과 비치 방식이 위장도급 문제와 연결될 가능성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정황 가운데 하나로 살펴봤습니다.
오늘은 이 단어만 기억하세요
동일·유사
법원은 표지의 회사명이 아니라 두 문서의 실제 내용과 작성·변경 과정이 얼마나 겹치는지를 살폈습니다.
마르 핵심 정리
1. 협력업체 명의의 문서라도 누가 처음 만들고 실제로 변경할 수 있었는지가 중요합니다.
2. 작업표준서가 결과 기준을 넘어 세부 작업방법과 순서까지 정했다면 지휘·명령을 판단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3. 법원은 표준서 하나만으로 결론내리지 않고 MES·현장지시·협력업체의 독립성 등 여러 사정을 함께 살폈습니다.
다음 회 예고
3회 — “포스코와 계약한 적도 없는데요?”
원청과 직접 계약하지 않은 2차 하청 노동자까지 법원은 왜 포스코의 지휘를 받았다고 판단했을까요? 다음 회에는 계약서보다 더 멀리 내려간 지시의 흐름을 따라가 봅니다.
책의 표지는 하루 만에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내용을 만들고 고칠 권한을 가졌는지는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자료와 해설 안내
이 글은 서울고등법원 2024나2011540·2024나2034031 판결과 대법원 2026다201959·2026다201960 판결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따옴표 안의 문장은 판결문 원문이며, 쉬운 해설·비유·캐릭터 대화·이미지 설명은 일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웅녀범이가 풀어쓴 내용입니다. 일부를 생략한 곳은 […]로 표시했습니다.
※ 게시 전에 공식 판결문과 인용 문장·띄어쓰기를 최종 대조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