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세 시 반.
시장은 아직 잠에서 덜 깬 채로 불을 켜고 있었다.
진우는 늘 그렇듯 건어물 골목 끝에서부터 걸었다. 발밑에서 물기 머금은 시멘트 바닥이 차박차박 소리를 냈다. 어디선가 얼음 깨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셔터를 반쯤 올리다 멈춘 채 담배를 물고 있었다. 새벽 시장의 냄새는 한결같았다. 비린 것과 마른 것이 섞이고, 거기에 젖은 종이 상자 냄새가 얹혔다. 진우는 그 냄새를 맡으면 하루가 시작됐다는 걸 알았다.
멸치 가게 앞에 섰다.
광주리가 줄지어 놓여 있었다. 큰 것, 중간 것, 작은 것. 진우는 손을 광주리에 넣고 한 줌 쥐었다. 손가락 사이로 멸치가 흘러내렸다. 마른 것들이 서로 부딪히며 사락사락 소리를 냈다. 빛깔을 봤다. 등이 푸른 게 좋은 거였다. 누런 건 오래된 거였다.
"오늘 거 좋아요."
가게 할머니가 비닐장갑 낀 손으로 광주리를 툭툭 쳤다.
"네."
진우는 중간 크기를 한 봉지 담았다. 국물 낼 때 쓰는 거였다. 마을에서 제일 잘 나가는 거였다.
그리고 손이 옆 광주리로 갔다.
작은 멸치였다. 손톱만 한 것들. 볶음용이었다. 진우는 그걸 한 줌 떴다. 봉지에 담았다. 입구를 모아 쥐었다. 손가락에 침을 묻혀 비닐을 비볐다. 매듭이 한 번에 안 지어져서 두 번 돌렸다. 그러고 나서 그 작은 봉지를 큰 봉지들 옆에 가지런히 놓았다.
손이 멈췄다.
진우는 그 작은 봉지를 내려다봤다.
연화마을 김 할머니가 좋아하던 거였다. 다른 어르신들은 국물 멸치만 찾는데, 김 할머니는 늘 작은 거를 따로 달라고 했다. 손주 오면 볶아 준다고. 손주가 자주 오는 것 같지도 않은데, 갈 때마다 그 작은 멸치를 한 봉지씩 챙겨 갔다. 그래서 진우는 마을 갈 때마다 김 할머니 몫으로 작은 멸치를 따로 담는 게 버릇이 됐다.
오늘도 손이 먼저 움직였다.
봉지를 묶고 나서야, 진우는 그걸 살 사람이 지금 마을에 없다는 걸 떠올렸다.
손가락이 매듭 위에 그대로 있었다.
다시 풀어 광주리에 쏟을까 싶었다. 그런데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풀어서 쏟는 것도, 그냥 두는 것도, 둘 다 어색했다. 멀리서 지게차 경적이 한 번 울렸다. 진우는 천천히 그 작은 봉지를 큰 봉지 둘 사이에 끼워 넣었다. 안 보이게.
"두 봉지요?"
할머니가 물었다.
"……네. 두 봉지요."
진우는 값을 치렀다. 천 원짜리를 세서 건넸다. 거스름돈을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 안에서 동전이 짤그락거렸다. 멸치 가게를 나오면서 봉지를 한 번 더 봤다. 작은 봉지는 큰 봉지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그게 나았다.
· · ·
두부 다섯 모. 계란 두 판. 콩나물 한 봉지. 파 한 단. 라면 한 박스. 고추장 작은 거 몇 통. 휴지, 비누, 소화제, 파스.
진우는 손에 익은 길을 따라 빠르게 돌았다. 두부는 모서리 깨진 걸 자기 몫으로 따로 뺐다. 모양 깨진 건 마을에 못 판다. 어르신들은 그런 거 주면 서운해한다. 값을 깎아 줘도 그렇다.
장은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다 싣고 나니 손이 시렸다. 진우는 손을 모아 입김을 불었다. 입김이 하얗게 퍼졌다 사라졌다. 유월인데도 새벽 시장은 찼다. 냉동 창고 한기 때문이었다.
희망호는 공터에 세워 뒀다.
흰색이었던 게 이제는 누런빛에 가까웠다. 짐칸 옆구리엔 서윤이가 작년에 붙여 준 그림 스티커가 있었다. 해랑 구름이랑, 누가 봐도 알 수 없는 동물 한 마리. 색이 다 빠졌는데 진우는 떼지 않았다.
무거운 건 아래, 가벼운 건 위. 계란은 제일 위. 멸치 봉지들은 운전석 옆자리에. 마른 건 따로 두는 게 버릇이었다.
진우는 운전석에 올랐다. 열쇠를 꽂고 돌렸다.
한 번에 걸리지 않았다.
크르릉, 하고 한 박자 늦게 시동이 들어왔다. 추운 날엔 가끔 그랬다. 두 번째에 걸렸다. 엔진이 부르릉 돌기 시작했다. 진우는 잠깐 그 소리를 들었다. 평소랑 비슷했다. 비슷한 것 같았다.
기어를 넣고 공터를 빠져나왔다.
· · ·
산으로 들어서자 비가 내렸다.
처음엔 와이퍼를 안 켜도 될 만큼 가늘었다. 앞 유리에 점점이 맺히다가, 오를수록 굵어졌다. 진우는 와이퍼를 켰다. 끼익, 끼익. 고무가 닳아 한쪽이 물기를 다 못 닦았다. 유리 한구석에 빗물이 줄을 그으며 흘렀다.
산길은 좁았다. 한쪽은 산, 한쪽은 골짜기. 가드레일은 없었다. 진우는 늘 산 쪽으로 붙어 갔다. 비가 오면 더 그랬다.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골짜기 아래에서 흰 것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무 사이로 안개가 지나갔다. 길이 흐려졌다. 진우는 속도를 줄였다. 헤드라이트를 켰는데도 빛이 안개에 부딪혀 도로 흩어졌다. 앞이 잘 안 보였다. 진우는 핸들을 두 손으로 잡았다. 손바닥에 땀이 났다.
오르막이 시작됐다.
진우는 액셀을 밟았다. 희망호가 끙, 하고 힘을 냈다. 그런데 소리가 거칠었다. 부르릉, 하던 소리에 한 박자가 더 끼어 있었다. 드르륵, 하는 소리. 아주 잠깐이었다. 진우는 들었다. 듣고도 안 들은 척했다.
오르막 중간에서 한 번 더 났다. 드르륵. 액셀을 밟을 때만 났다. 평지에선 안 났다. 힘을 줄 때만 났다. 진우는 입을 다물고 운전했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래된 차는 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정비소 한번 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다음에, 다음에, 하고 미뤘다.
빗줄기가 굵어졌다. 와이퍼가 빨라졌다. 끼익끼익끼익. 진우는 산 쪽으로 더 붙었다. 골짜기 안개는 점점 짙어졌다. 거기 아래에 뭐가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진우는 보지 않았다. 산만 보고 갔다.
핸들이 가늘게 떨렸다.
오르막을 다 오를 때쯤이었다. 두 손으로 잡은 핸들에서 진동이 올라왔다. 처음엔 길이 울퉁불퉁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평평한 데서도 떨렸다. 손바닥으로 그 떨림이 전해졌다. 발밑 바닥도 가늘게 울렸다. 시트 아래에서 드드드, 하는 게 올라왔다. 진우는 핸들을 더 꽉 잡았다. 떨림이 손에서 팔로 올라왔다. 진우는 속도를 조금 줄였다. 그러자 떨림도 좀 가라앉았다. 진우는 그 속도를 유지했다.
고개를 하나 넘었다.
내리막이 시작됐다. 진우는 브레이크를 밟았다.
발에 힘을 줬는데, 평소보다 페달이 한 뼘쯤 더 들어갔다. 푹, 하고. 차가 멈추는 게 한 박자 늦었다. 진우는 다시 밟았다. 두 번째엔 잡혔다. 끽, 하고 섰다. 진우는 그 페달 느낌을 발에 기억해 뒀다. 평소엔 살짝만 밟아도 묵직하게 섰는데, 오늘은 헐거웠다.
빗물 때문인가 싶었다. 젖은 길이라 그런가 싶었다. 진우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내리막에서 진우는 브레이크를 평소보다 일찍, 평소보다 자주 밟았다. 발끝에 신경이 가 있었다. 한 발은 늘 페달 위에 얹어 두고 갔다.
· · ·
연화마을은 고개 너머 작은 분지에 있었다.
집이 열두 채. 사람은 그보다 적었다. 빈집이 셋. 마을 입구 느티나무 아래에 평상이 있었다. 여름이면 거기서 밥도 먹고 콩도 까고 낮잠도 잤다.
진우는 차를 느티나무 아래로 바짝 댔다. 나뭇잎이 우산처럼 비를 좀 막아 줬다. 그래도 빗방울이 떨어졌다. 진우는 짐칸 위에 천막을 펼쳐 묶었다. 끈을 당겨 매듭을 지었다. 손이 비에 젖었다.
확성기를 들었다. 마이크를 입에 댔다. 헛기침을 한 번 했다.
"보고 싶어서 오늘도 또 왔어요오. 비 오는데 천천히 나오세요오. 안 미끄럽게에."
목소리가 분지에 퍼졌다. 산에 부딪혀 한 박자 늦게 메아리가 돌아왔다. 빗소리에 섞여 멀어졌다.
잠시 조용했다.
빗방울이 천막을 두드리는 소리. 느티나무 잎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 그게 전부였다.
그러다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삐걱, 하고 마루문 여는 소리. 마당에 고무신 끄는 소리. 우산 펴는 소리. 어르신들이 하나둘 나왔다. 등이 굽은 박 할머니가 우산을 받고 느릿느릿 걸어왔다. 최병수가 장화를 신고 성큼성큼 나왔다. 저쪽 끝집에서 서윤이가 노란 우비를 입고 폴짝폴짝 뛰어나왔다.
진우는 천막 한쪽을 걷어 물건을 보이게 했다.
· · ·
사람들이 평상 쪽으로 모였다.
비가 와서 다들 처마 밑에 섰다. 평상 위엔 빗물이 좀 들이쳤지만, 한쪽 끝은 느티나무 가지가 막아 줘서 말라 있었다. 어르신들은 늘 그 마른 쪽에 앉았다.
진우는 두부를 꺼내고, 계란을 꺼내고, 콩나물을 꺼냈다. 누가 두부 한 모, 누가 계란 한 줄. 봉지에 담아 건넸다. 손이 바빴다.
그러다 진우는 평상을 봤다.
평상 한쪽이 이상하게 넓어 보였다.
거기엔 방석이 하나 있었다. 빛바랜 꽃무늬 방석. 솜이 눌려 납작해진 거였다. 김 할머니가 늘 깔고 앉던 자리였다. 거기 앉아 콩을 까고, 부채질을 하고, 지나가는 말로 마을 사람 안부를 챙겼다. 그 자리는 늘 김 할머니로 채워져 있었다.
오늘은 방석만 있었다.
방석 위는 비었는데, 그 빈 데가 이상하게 컸다. 사람 하나 없을 뿐인데 평상 절반이 휑했다. 누가 방석을 치우지 않았다. 아무도 거기 앉지 않았다. 어르신들은 다들 반대쪽에 모여 앉았다. 마른 쪽인데도 그쪽엔 안 앉았다. 방석 쪽은 그냥 비워 뒀다.
방석 옆에는 작은 바구니가 하나 있었다.
대나무로 엮은 낡은 바구니였다. 손잡이가 한쪽 닳아 있었다. 김 할머니가 콩 까던 거였다. 안에는 까다 만 콩이 반쯤 들어 있었다. 깍지째 든 것도 있고, 깐 것도 있었다. 콩깍지 몇 개가 바구니 옆에 흩어져 있었다. 누가 치우지 않았다. 김 할머니가 그날 까다 만 그대로였다.
바구니는 비를 안 맞게 처마 안쪽으로 들어와 있었다. 누가 자리만 옮겨 놓은 것 같았다. 콩은 그대로였다. 까다 만 채로. 마저 깔 사람을 기다리는 것처럼.
진우는 두부를 건네던 손을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 · ·
평상 아래에서 갈범이가 나왔다.
줄무늬 고양이였다. 등에 검은 줄이 호랑이처럼 나 있어서 마을 사람들이 갈범이라고 불렀다. 평상 밑은 갈범이 자리였다. 비가 오면 거기 들어가 몸을 말았다. 누구 고양이도 아니었다. 그냥 마을에 살았다.
진우는 운전석에 가서 작은 멸치 봉지를 가져왔다. 손바닥에 멸치 몇 마리를 덜었다. 평상 아래쪽, 갈범이 앞에 놓아 줬다. 늘 하던 거였다.
갈범이는 멸치를 바로 먹지 않았다.
코를 멸치에 가져다 댔다. 킁, 하고 냄새를 맡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었다.
평상 위를 봤다.
갈범이는 평상 위를 한 바퀴 둘러봤다. 어르신들 앉은 쪽을 봤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방석 쪽을 봤다. 빛바랜 꽃무늬 방석. 갈범이의 눈이 거기 머물렀다. 한참이었다.
꼬리가 바닥을 한 번 쓸었다. 귀가 한 번 움찔했다. 갈범이는 방석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멸치는 발 앞에 그대로였다.
빗방울이 처마에서 떨어졌다.
갈범이는 한참 뒤에야 고개를 숙였다. 멸치를 한 마리 물었다. 천천히 씹었다. 그리고 다시 평상 위를 봤다. 방석 쪽을.
진우는 그걸 보고 있다가, 다른 데로 눈을 돌렸다.
· · ·

박 할머니가 평상 쪽으로 왔다.
허리가 기역 자로 굽은 할머니였다. 우산을 한 손에 들고, 한 손은 무릎을 짚고 걸었다. 걸음이 느렸다. 평상 앞까지 오는 데 한참 걸렸다.
"계란 있나."
"네, 할머니. 오늘 거 좋아요."
"한 줄만 주게. 다 못 먹어."
진우는 계란 열 알을 봉지에 담았다. 깨지지 않게 한 알씩 넣었다. 입구를 묶어 건넸다. 박 할머니가 받았다. 받아 들고는 돌아섰다.
그런데 가지 않았다.
박 할머니는 평상 앞에 그대로 섰다. 비에 젖은 우산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할머니는 고개를 들어 평상을 봤다. 방석 쪽이었다.
박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빗물이 우산 끝에서 떨어졌다. 똑. 똑. 느티나무 잎에서도 떨어졌다. 처마에서도 떨어졌다. 박 할머니는 그 빗소리 속에 서서 방석을 봤다. 굽은 등이 더 굽어 보였다. 우산을 든 손이 살짝 떨렸다. 늙은 손이었다. 손등에 핏줄이 솟아 있었다.
진우는 봉지를 정리하는 척했다.
박 할머니는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누가 말을 걸지도 않았다. 다들 못 본 척했다. 빗소리만 났다. 박 할머니의 입이 한 번 달싹였다. 무슨 말을 하려다 만 것 같았다.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박 할머니는 계란 봉지를 두 손으로 고쳐 잡았다.
한 손으로 들고 있던 걸 두 손으로 바꿔 쥐었다. 봉지 끈을 손가락에 한 번 더 감았다. 떨어뜨리지 않으려는 것처럼. 아니면 손에 뭐라도 쥐고 있고 싶은 것처럼. 박 할머니는 그 봉지를 가슴 쪽으로 당겨 안았다.
그러고는 돌아섰다.
느릿느릿, 왔던 길을 되짚어 갔다. 우산이 빗속에서 천천히 멀어졌다. 진우는 그 뒷모습을 봤다. 박 할머니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 · ·
평상 한쪽에서 정 영감이 콩나물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옆에 박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우리 며느리가 인터넷으로 쌀을 보냈어."
"인터넷으로?"
"휴대폰으로 딱 누르면, 다음 날 트럭이 마을 입구에 갖다 놓고 가. 무겁게 들지 말라고."
"편하네."
"편하지. 편한데."
정 영감이 콩나물을 내려놨다.
"물건만 와. 사람이 안 와. 기사가 문 앞에 턱 놓고 휑 가 버려. 얼굴도 못 봐. 말 한마디를 못 섞어."
"그건 그래."
"강 양반은 안 그렇잖여."
정 영감이 진우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진우는 두부를 담다가 못 들은 척했다.
"비 오는 날 산까지 꾸역꾸역 올라오고, 무거운 거 들어 주고, 이 얘기 저 얘기 다 들어 주고. 그게 사람 사는 거지. 물건이야 어디서 못 사. 근데 정은 어디서 사. 못 사."
박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싸다고 그것만 좇다 보면, 나중엔 곁에 사람이 하나도 안 남어. 주는 게 있어야 오는 것도 있는 거여."
정 영감은 그 말을 하고는 더 안 늘렸다. 입맛을 다시고는, "두부나 한 모 줘 봐" 했다. 진우는 두부를 담아 건넸다. 정 영감이 값을 치렀다. 천 원짜리 두 장.
"비 오는데 고생이 많어."
"아니에요."
진우는 짧게 답했다. 정 영감이 두부를 들고 돌아섰다. 진우는 그 뒷모습을 한 번 봤다. 정 영감 말이 맞았다. 인터넷은 물건을 보내지, 정 영감을 보내진 않았다. 진우는 그 생각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비가 천막을 두드렸다.
진우는 잠깐 평상에 둘러앉은 사람 수를 셌다. 다섯이었다. 작년 이맘때는 일고여덟은 됐다. 재작년에는 평상이 꽉 찼다. 빈집이 하나둘 늘 때마다 평상도 그만큼 비어 갔다. 진우는 셈을 하다 말고 다음 손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 ·
진우는 평상 옆에 접이식 탁자를 펴고 셈을 했다. 현금을 내는 사람도 있고, 외상을 다는 사람도 있었다.
"강 양반, 이거 외상 달아 줘. 연금날 갚을게."
"네."
진우는 장부에 적었다. 어르신이 미안한지 한마디 보탰다.
"외상이라고 떼먹는 거 아녀. 적어 놨으면 갚는 거지. 사람이 그래야 또 외상도 다는 거여."
"알아요."
진우는 짧게 답했다. 적어 두면 갚고, 갚을 사람이니까 적어 두는 거였다. 못 믿을 사람한테는 아예 안 달아 줬다. 믿으니까 적는 거였다. 외상 장부는 그런 거였다.
연금 나오는 날 한꺼번에 갚는 사람이 많았다. 진우는 그걸 다 외상 장부에 적었다.
장부는 낡은 공책이었다. 겉장이 너덜너덜했다. 진우는 마을마다 장을 나눠 적었다. 앞쪽은 돌밭골, 가운데는 연화마을, 뒤쪽은 너머실.
진우는 연화마을 장을 폈다. 손가락에 침을 묻혀 장을 넘겼다. 사락, 하고 종이가 넘어갔다. 박순임. 최병수. 그 아래로 날짜와 물건과 금액이 적혀 있었다.
장을 한 장 더 넘겼다.
김 할머니 이름이 나왔다.
김말순. 진우가 적은 이름이었다. 그 아래로 외상 기록이 죽 있었다. 김 할머니는 외상을 많이 달지 않았다. 늘 그때그때 현금으로 냈다. 잔돈 없을 때만 가끔 달았다. 그리고 다음에 올 때 꼭 갚았다.
진우는 마지막 기록을 봤다.
날짜가 적혀 있었다. 그 옆에.
멸치 한 봉. 두부 한 모.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아래는 비어 있었다.
진우는 그 두 줄을 봤다. 멸치 한 봉. 작은 멸치였을 거였다. 김 할머니는 늘 작은 걸 달라고 했으니까. 두부 한 모.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우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냥 평소처럼 물건을 팔았을 거였다. 평소처럼 외상을 적었을 거였다. 이게 마지막일 줄은 그땐 몰랐다.
진우는 그 두 줄을 한참 봤다. 글자는 진우가 쓴 거였다. 진우의 글씨였다. 그날의 진우는 아무 생각 없이 이 두 줄을 적었다. 그냥 외상 한 줄이었다.
빗소리가 났다.
진우는 손가락을 그 두 줄 위에 잠깐 댔다. 종이가 까슬했다. 뭐라고 더 적지 않았다. 갚을 사람이 없어도, 줄을 긋지도 않았다. 그냥 뒀다.
장부를 덮었다.
· · ·
"두부 한 모 주쇼."
최병수였다. 오십쯤 된 사내였다. 마을에서 제일 젊은 축이었다. 서울에서 정비 일을 하다 몇 해 전에 내려왔다. 손이 거칠고 컸다.
"네."
진우는 두부를 봉지에 담았다. 최병수가 만 원짜리를 냈다. 진우가 거스름돈을 셌다.
"우리 손녀가 두부를 좋아해서."
"아, 그래요."
"부쳐 주면 한 모를 다 먹어요. 조그만 게."
거친 얼굴에 잠깐 부드러운 게 스쳤다.
"몇 살이에요?"
"여섯 살. 지 에미가 일하느라 나한테 맡겨 놨어요."
"잘 키우시네요."
"키우긴. 그냥 두부나 부쳐 주는 거지."
최병수는 두부 봉지를 들고 돌아섰다. 그러다 한마디 더 했다.
"비 오는데 살살 가쇼. 그 산길 미끄러."
"네. 살살 갈게요."
최병수가 빗속을 걸어갔다. 첨벙첨벙. 물웅덩이 밟는 소리가 멀어졌다. 진우는 다음에 올 때 두부를 한 모 더 챙겨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 · ·
"아저씨."
서윤이였다. 노란 우비를 입고 있었다. 모자가 너무 커서 눈만 빼꼼 나왔다. 손에 작은 비닐 가방을 들고 있었다.
"어, 서윤이 왔네."
"오늘 뭐 사요?"
"오늘은 사탕 줄까?"
진우는 탁자 밑에서 사탕을 하나 꺼내 줬다. 서윤이가 받아 우비 주머니에 넣었다.
서윤이는 가지 않고 진우 옆에 남았다.
마을에 애라곤 서윤이 하나였다. 다른 집은 다 노인뿐이었다. 서윤이는 진우가 장사하는 걸 구경하는 걸 좋아했다. 계란을 어떻게 봉지에 넣는지, 두부를 어떻게 뜨는지. 옆에 쪼그려 앉아 턱을 괴고 봤다. 우비에서 빗물이 똑똑 떨어졌다.
"아저씨, 이거 내가 줄까요?"
서윤이가 손을 내밀었다. 저쪽 할머니한테 갈 계란 봉지였다. 진우는 그걸 줬다. 깨지지 않게 두 손으로 들라고 했다. 서윤이가 두 손으로 받아 들고 폴짝폴짝 갖다줬다. 갖다주고 또 와서 진우 옆에 앉았다.
그러고는 평상 쪽을 봤다.
서윤이도 방석을 봤다.
하지만 서윤이는 어른들처럼 가만히 보지 않았다. 진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저씨, 할머니 언제 와요?"
진우는 잠깐 말이 막혔다.
"……누구."
"김 할머니. 콩 까는 할머니."
서윤이가 방석을 가리켰다. 손가락으로 콕, 하고.
"몰라. 아저씨도 잘 몰라."
"그럼 언제 물어봐요?"
진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서윤이는 평상으로 갔다. 방석 옆 콩 바구니 앞에 쪼그려 앉았다. 까다 만 콩을 손가락으로 만졌다. 깍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손톱으로 깍지를 까 봤다. 콩알이 또르르 굴렀다. 서윤이는 그걸 다시 바구니에 넣었다.
"할머니 오면 이거 마저 까야 되는데."
서윤이가 말했다. 콩 바구니를 보면서. 진우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서윤이는 깍지 몇 개를 더 까서 바구니에 넣었다. 할머니가 까다 만 걸 대신 까 주는 것처럼. 작은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깍지를 까면 콩알이 굴러 나왔다. 서윤이는 그걸 바구니에 모았다. 그러다 손을 멈췄다. 바구니를 가만히 봤다. 그러고는 일어나서 진우 쪽으로 왔다.
서윤이가 가방을 열었다. 진우한테 안을 보여 줬다. 초코파이가 하나 들어 있었다. 포장이 좀 눌려 있었다. 한참 들고 다닌 것 같았다.
서윤이가 초코파이를 꺼냈다. 손바닥에 올려놓고 살살 만졌다. 포장 위를 손가락으로 눌러 봤다. 말랑한지 보는 거였다.
"안 녹았어요. 비 와서 시원하니까."
서윤이가 진우한테 보여 줬다. 진짜 안 녹았다는 듯이. 그러고는 다시 가방에 넣었다. 바닥에 똑바로. 안 눌리게.
"이거 할머니 주려고."
"……"
"할머니가 초코파이 좋아하잖아요. 지난번에 반 나눠 먹었어요. 할머니가 반, 내가 반. 그런데 할머니가 자기 거 더 큰 쪽을 나 줬어요. 이만큼."
서윤이가 손가락으로 크기를 보여 줬다. 엄지랑 검지를 벌려서.
"그래서 이번엔 내가 통째로 주려고요. 안 나누고. 다."
서윤이가 가방을 닫았다. 초코파이를 꺼내지 않았다. 그냥 넣어 두는 거였다. 할머니가 오면 주려고.
"할머니 오면 줄 거예요."
서윤이가 말했다. 누구한테 하는 말도 아니었다. 혼잣말 같았다. 서윤이는 가방을 한 번 토닥였다. 안에 든 게 안 부서지게.
어른들은 다 알았다. 방석을 보고도 말 안 한 박 할머니도, 평상을 본 최병수도, 멸치를 따로 챙긴 진우도. 다들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그게 진짜가 될 것 같아서.
서윤이만 몰랐다.
서윤이만 아직 기다렸다. 가방에 초코파이를 넣고, 할머니가 오면 주려고. 어른들이 묻지 않는 걸 서윤이는 물었다. 어른들이 비워 둔 자리를 서윤이는 채워질 거라고 믿었다.
어른들은 기다리지 않는 법을 알았다. 살면서 여러 번 배운 거였다. 누가 떠나면, 떠난 자리를 비워 두고, 그러다 천천히 잊는 거였다. 묻지 않고, 말하지 않고, 그냥 비워 둔 채로. 그게 어른이 되는 거였다.
서윤이는 그걸 아직 안 배웠다. 서윤이한테는 떠난 게 아니라 잠깐 없는 거였다. 잠깐 없으면 다시 오는 거였다. 그래서 서윤이는 가방을 안고 기다렸다. 콩 바구니를 대신 까 주면서. 초코파이가 녹지 않게 지키면서. 할머니가 올 때까지.
"할머니한테 안부 전해 줄게."
진우가 겨우 말했다.
"네! 초코파이 있다고도 말해 주세요. 기다린다고."
"……그래. 그럴게."
서윤이가 밝게 대답했다. 사탕을 입에 물고 폴짝폴짝 뛰어갔다. 그러다 몇 걸음 가서 멈췄다. 돌아서서 가방을 한 번 더 토닥였다. 안에 든 게 잘 있나 확인하는 거였다. 그러고는 다시 뛰어갔다. 노란 우비가 빗속에서 멀어졌다.
진우는 그 뒷모습을 오래 봤다. 가방을 안고 뛰어가는 작은 등을. 그 안에 든 초코파이를. 진우는 다음에 올 때 초코파이를 한 박스 챙겨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그 생각을 멈췄다. 초코파이가 문제가 아니었다. 진우는 그걸 알았다. 알면서도, 한 박스 챙겨 와야겠다고 다시 생각했다.
· · ·
장사가 끝났다.
비는 좀 가늘어졌다. 어르신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갔다. 우산을 받고, 봉지를 들고, 느릿느릿. 마당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평상 쪽이 점점 비었다.
진우는 물건을 정리했다. 안 팔린 두부 두 모. 계란 한 판 반. 콩나물 조금. 다 짐칸에 실었다. 천막을 걷어 접었다. 탁자를 접어 넣었다. 장부를 운전석 옆에 뒀다.
멸치 봉지도 거기 있었다. 작은 멸치 봉지. 절반쯤 남아 있었다. 갈범이한테 준 거 말고는 산 사람이 없었다.
진우는 그 봉지를 잠깐 봤다. 도로 가져가야 했다. 누가 살 사람이 없었으니까. 진우는 봉지를 운전석 옆에 그대로 뒀다. 다음에 또 가져올 거였다. 다음에도 살 사람이 없을지 몰라도.
평상이 조용해졌다.
사람이 다 가고 나니 빗소리만 남았다. 느티나무 잎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소리. 빈 평상 위로 빗방울이 떨어졌다 말랐다.
비가 한 번 가늘어졌다. 그러다 또 굵어졌다. 느티나무 잎이 그때마다 다르게 울었다. 가늘 때는 잎이 사르르, 굵을 때는 후두두. 진우는 짐을 다 싣고도 바로 떠나지 않았다. 운전석 문에 한 손을 얹은 채 평상을 봤다.
마을은 조용했다. 집집마다 문이 닫혀 있었다. 어느 집 굴뚝에서 연기가 한 줄 올라왔다. 누가 점심을 짓는 모양이었다. 빗속이라 연기가 잘 안 올라가고 지붕 위에 낮게 깔렸다. 또 어느 집 창에 불이 켜져 있었다. 흐린 날이라 한낮인데도 불을 켠 거였다.
평상에는 김 할머니 방석이 있었다. 그 옆에 콩 바구니. 서윤이가 까다 만 콩. 까다 만 깍지 몇 개. 그게 다였다. 사람은 없고 물건만 남았다.
방석은 그대로 있었다.
빛바랜 꽃무늬 방석. 아무도 치우지 않은 자리. 진우는 그걸 봤다. 누가 치웠어야 하는데, 아무도 치우지 않았다. 진우도 치우지 못했다. 치우면 그게 진짜가 될 것 같아서.
빗방울 하나가 방석 위에 떨어졌다. 처마 끝에서 튄 거였다. 꽃무늬 위에 동그란 자국이 졌다. 천천히 번졌다. 진우는 그걸 봤다. 방석을 처마 안쪽으로 밀어 줄까 잠깐 생각했다. 손을 뻗다 말았다. 그것도 어쩐지 안 될 일 같았다. 진우는 손을 내렸다.
비가 다시 가늘어졌다.
갈범이가 평상 위로 올라갔다.
아래에 있던 갈범이가 어느새 위로 올라와 있었다. 발소리도 없었다. 천천히 걸었다. 평상 위를 가로질러 갔다. 콩 바구니 옆을 지났다. 깍지 하나를 앞발로 툭 건드렸다. 굴렀다. 갈범이는 그걸 보지도 않고 지나갔다. 그리고 방석 옆에 앉았다.
방석 위가 아니라, 옆에.
갈범이는 방석에 올라가지 않았다. 그 옆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앉았다. 꼬리를 발 위에 얹었다. 눈을 반쯤 감았다. 그리고 가만히 있었다. 빗속에서. 빈 방석 옆에서. 마치 누구를 기다리는 것처럼. 아니면 빈자리를 지키는 것처럼.
진우는 그 모습을 한참 봤다.
빗소리가 났다. 느티나무에서 물이 떨어졌다. 갈범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방석도 움직이지 않았다. 콩 바구니 안의 콩도 그대로였다. 마을은 조용했다. 그 조용함 속에서, 빈자리만 자꾸 커졌다. 사람 하나 없는 자리가 평상보다, 마을보다 커지는 것 같았다.
진우는 운전석 문을 열었다.
· · ·
진우는 운전석에 올랐다.
시트가 축축했다. 빗물이 좀 들어왔던 모양이었다. 진우는 소매로 핸들을 한 번 닦았다. 열쇠를 꽂았다.
돌렸다.
희망호가 걸리지 않았다.
크르릉, 하는 소리만 났다. 시동이 들어오다 말았다. 계기판 불빛이 한 번 들어왔다 꺼졌다. 진우는 한 박자 쉬었다가 다시 돌렸다. 또 안 걸렸다. 크르릉. 크르릉. 엔진이 돌려다 말기를 반복했다. 돌 때마다 계기판 바늘이 떨다가 도로 내려앉았다.
진우는 잠깐 멈췄다.
빗소리를 들었다.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잠깐 기다렸다. 차도 사람도 숨을 고르는 것 같았다. 평상 쪽을 봤다. 갈범이가 방석 옆에 앉아 진우 쪽을 보고 있었다. 노란 눈이었다. 빗속에서 그 눈만 또렷했다.
진우는 다시 열쇠로 손을 가져갔다.
세 번째에도 안 걸렸다. 크르릉, 크르릉, 하다가 푸식, 하고 꺼졌다. 진우는 열쇠에서 손을 뗐다. 잠깐 가만히 있었다. 그러고는 한 번 더 돌렸다.
네 번째에 걸렸다.
부르릉, 하고 엔진이 돌기 시작했다. 그런데 소리가 평소 같지 않았다. 평소엔 한 번에 부드럽게 돌던 게, 오늘은 한참 떨다가 잡혔다. 부르릉, 하는 소리 끝이 길게 흔들렸다. 부르르르릉. 진우는 그 소리를 들었다. 엔진이 한참 떨었다. 보닛 위로 그 떨림이 보였다. 쇠가 가늘게 우는 소리가 났다. 떨다가, 천천히, 고르게 돌기 시작했다. 그래도 끝에 뭔가 거친 게 남아 있었다.
진우는 핸들을 잡고 그 소리를 들었다.
평소보다 길게 흔들렸다. 평소보다 오래 떨렸다. 진우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것도 같았다. 모르고 싶었다.
진우는 차에서 한 번 내릴까 생각했다. 보닛을 열어 볼까. 그런데 비가 왔다. 빗속에서 보닛을 열어 봐야 뭐가 보이지도 않을 거였다. 기름때 묻은 쇳덩이만 보일 거였다. 진우는 보닛 여는 법은 알아도 그 안을 볼 줄은 몰랐다. 안다 한들 빗속이었다. 진우는 그냥 앉아 있기로 했다.
액셀을 살짝 밟아 봤다. 드르륵, 하는 소리가 한 번 났다. 새벽에 들었던 그 소리. 산길에서 들었던 그 소리. 진우는 입을 다물었다. 손바닥에 그 진동이 전해졌다. 발끝에도. 시트 아래에서도. 희망호 전체가 가늘게 떨고 있었다. 멈춰 선 채로.
기어를 넣었다.
희망호가 천천히 움직였다. 한 번 끄덕, 하고 앞으로 나갔다. 진우는 느티나무 아래를 빠져나왔다. 사이드미러로 평상을 한 번 봤다. 빈 방석. 그 옆에 앉은 갈범이. 콩 바구니. 다 비를 맞고 있었다. 미러 속에서 점점 작아졌다. 그러다 길을 도는 데서 보이지 않게 됐다.
진우는 산길로 들어섰다.
비가 다시 굵어졌다. 안개가 골짜기에서 올라왔다. 길은 미끄러웠다.
오르막에서 엔진이 또 드르륵거렸다. 아까보다 잦았다. 핸들도 떨렸다. 진우는 속도를 줄였다. 내리막에서는 브레이크를 일찍 밟았다. 페달이 또 한 뼘 들어갔다. 진우는 두 번 나눠 밟았다. 한 번, 또 한 번. 그렇게 천천히 내려갔다.
진우는 핸들을 잡고 산만 보고 갔다. 와이퍼가 끼익끼익 움직였다. 엔진이 떨고, 브레이크가 헐겁고, 핸들이 울었다. 셋이 한꺼번이었다. 진우는 그걸 다 느끼면서도 산만 봤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려 했다. 다음에 정비소 가면 된다고 생각하려 했다.
그런데 발끝은 계속 브레이크 위에 있었다. 손은 핸들을 평소보다 꽉 쥐고 있었다.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진우의 입은 별일 아니라고 하는데, 몸은 아니라고 하고 있었다.
진우는 다음에 마을에 올 때를 생각했다.
다음에도 작은 멸치를 챙길까. 챙겨도 살 사람이 없을 텐데. 그래도 손이 또 그쪽으로 갈 것 같았다. 방석은 다음에도 그대로 있을까. 갈범이는 다음에도 그 옆에 앉아 있을까. 서윤이는 다음에도 가방에 초코파이를 넣고 다닐까.
진우는 답을 몰랐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거였다.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아무도 방석을 치우지 않았고, 아무도 멸치를 도로 쏟지 않았고, 아무도 초코파이를 꺼내지 않았다. 다들 그냥 두고, 그냥 기다렸다. 끝났는지 아닌지도 모른 채로.
기다림은 끝났을 때보다, 끝나지 않았을 때 더 길게 느껴졌다.
